[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알파고가 인간을 넘어섰다. 그것도 단순계산을 넘어 고차원적 사고와 직관이 필요해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믿어지던 바둑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컴퓨터가 최고의 고수를 넘어선 것이 요 며칠사이의 일이니 어쩌면 우리같은 일반인의 범상한 능력은 진작에 컴퓨터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알파고 이전에도 돈 몇 천원에 살 수 있는 흔해빠진 전자계산기가 이미 오래전 인간의 연산능력을 넘어섰으니 어찌보면 바둑에서 기계의 인간 추월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기계의 고안 목적은 특정영역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을 얻기 위해이다. 그러니 어쩌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승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알파고는 세계의 어느 한곳에서만 고정되어 존재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지구촌 각지에서 바둑대국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함에 있어서 세계 각지에 필요한 장소에 여러 대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성능의 알파고 오로지 한 대, 그 뿐이면 인간을 이기기에 족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기계문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설정을 가진 SF영화에서 매우 흔하게 접해왔던 것이다. 영화 메트릭스 시리즈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나오는 절대자 같은 메인 컴퓨터를 떠올리면 편할 것이다.

필자는 대기업 콜센터에서 기계의 인간지배와 유사한 광경을 목격한 적도 있다. 고성능 컴퓨터가 전화를 각각의 상담직원에게 분배하고, 상담직원은 기계가 상황에 따라 보여주는 화면의 스크립트를 기계보다 더 기계적으로 읽는 모습이 괴기스럽다 여겼었다. 이것이 기계의 인간지배가 아니고 무엇이랴.

알파고의 등장으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혁명이 예상된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라진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은 기계파괴운동까지 벌이며 투쟁했으나 결국은 이에 적응해(혹은 적응되어) 컨베이어 벨트에 소모품처럼 붙어 기계가 주는 일거리를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 우려를 반영한 탓인지 인간을 넘어선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사라질 직업들을 예상하는 신문기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직종은 수많은 정보의 처리능력, 차가운 이성과 치밀한 계산이 요구되는 직종이고 많은 화이트 칼라 직종과 전문직업군이 그에 해당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한다면 인간의 직업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유지보수하는 영역과 같은 영역이나,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감성'의 영역으로 축소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감성'이라는 영역은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도 '감성+팔이'라는 조어를 통해 하찮거나 무능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여겨지곤 하였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이 기계보다 나을 것이 이젠 '감성'하나 밖에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기에 '감성'은 이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주요직업의 중요한 소양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철저한 냉정함과 빈틈없는 계산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연적 인과관계 같은 변치않는 결론밖에 없다. 그러므로 변호사가 철저한 냉정과 빈틈없는 계산으로 도출된 정답만을 의뢰인에게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의뢰인의 마음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필자의 지인들은 필자에게 "너는 차가운 변호사로 살기에 너무도 인간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냉정함이 변호사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의뢰인과 공감하여 함께 화내고 슬퍼하는 것을 에둘러 비난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컴퓨터보다 나은 점이라고는 '감성'밖에 없게 되어버린 지금에는 그만한 축복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제 '감성'이 없는 변호사는 '기계만도 못한' 변호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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