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두렛일을 하는데 10명이 김을 매는것 보다 7명이 김을 매고 3명이 풍장을 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 한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는 안 맞는 것이지만 인간 내면에 내재된 흥풀이는 어떤 동기부여가 되는 순간 물질적 에너지로 전환되어 곱절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시가(詩歌)를 통한 정신적 에너지의 에스컬레이터 현상과 심리적 카타르시스는 고대의 주술적 무가(巫歌)가 말해주듯 그 역사가 꽤 깊다.
 신라 향가중 역사의 숨결이 질긴 처용가(處容歌)를 보면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나온다.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누구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김완진 해독)
 간통 현장을 보고난 남편이 이토록 태평할 수 있을까. 서구적인 시각이라면 그 불륜의 현장에 비수라도 드리대었으련만 처용은 아내의 탈선을 목격하고도 너울너울 춤을 추며 역신(疫神)을 위로해 돌려 보낸다.
 두들겨 패는 것이 외형적 보복이라면 관용을 베푸는 것은 내면적 카타르시스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접어두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벽사를 추구하는 것은 심리적 갈등 치료방식의 한 유형에 속한다.
 득오가 화랑인 죽지랑을 사모하여 지였다는 「모죽지랑가」나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지은 「제망매가」, 충담사의 「안민가」, 어느 소 끄는 노인이 지었다는 「헌화가」등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향가들은 한결같이 노래를 통해 마음을 순화하는 문학적 치유 방법론을 안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문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의 평시조 한 대목을 보자. 「노래를 처음으로 만든 이는 시름도 많기도 하겠지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 노래를 불러 풀었단 말인가/ 진실도 이렇게 하여 풀릴 것이라면 나도 불러 보리라」
 마음의 시름을 시가를 통해 해소하는 문학적 치료법을 그는 소개하고 있다. 청주목사를 지낸바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는 심성의 수양을 위해 한시(漢詩)를 뽑은 정언묘선을 펴낸바 있다.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기 위함이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 마음의 병도 육신의 병도 어느정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난후 병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얘기가 종종 회자된다. 문학치료론은 정운채 교수(건국대)등을 중심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추세다.
 충북시조문학회가 최근 충북대병원 로비서 환자를 위한 문학 치료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영혼의 샘물이 되어, 재활의 활력소가 되어 보다 많은 엔돌핀을 분비케 한 것이라 여겨진다. lb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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