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스마트 농업과 6차 산업의 미래] ⑥ 청주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

故심순섭(오른쪽) 할머니와 딸 박해순 대표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심순섭 할머니의 상황버섯 된장은 재료부터 차별화됐다. 할머니는 장(醬)도 묵으면 보약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해 1월, 97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상황버섯 달인 물로 담근 된장물을 마셨다. 5~10년 숙성된 된장에서는 '약리성분'이 입증됐다.

할머니의 된장은 약으로 통한다. 딸은 고인의 믿음을 이어 청주시 남이면에서 된장을 담그고 있다. 직접 작목반을 만들어 콩 농사를 짓고 2009년에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장도 보약이 된다는 철학 속에 운영되는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 박해순(56) 대표를 지난 주말 청주시 미원면 대신리에서 만났다. / 편집자

#생활의 바탕, 음식의 기본

된장과 간장은 우리 음식의 기본이었다. 그 집의 전통이었고 생활의 바탕이었다.

"소중하게 보관하며 아껴먹고,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기 위해 미련스럽게 직접 손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집하고 있어요."

박해순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친정어머니 심순섭 할머니로부터 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된장물을 마시며 자랐다.

할머니도 박 대표도 삶 그 자체였던 된장이 사업이 될 줄은 몰랐다. 큰 아들을 따라 미원면 대신리에 정착한 심순섭 할머니는 아들, 딸의 지인들이 오면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퍼주곤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약된장을 담가달라는 부탁이 잦아졌다. 그러다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탁구 국가대표였던 작은 아들이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박해순 대표가 친정어머니와 장 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 즈음이다.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작은 아들에겐 시골 살이가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심순섭 할머니의 아버지, 박해순 대표의 외할아버지는 청주시 장성동의 천석꾼이었다. 약주로 쓰린 속을 상황버섯 끓인 물로 달래 왔다는 것을 직접 보고 또 들었다.

"엄마가 잘 담그는 약된장을 담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엄마가 담근 약된장과 간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처럼 약된장에 덧장을 대는 방식으로 장을 담가보자고 결심했지요."

자신 있었다. 아흔 일곱 생애를 살면서 심순섭 할머니는 찬물을 그냥 마신 적이 없었다. 소화가 안 되면 간장을 타 먹고, 뜨거운 물에 된장을 타서 마시곤 했다. 아이들도 그렇게 키웠다.

#맑은 공기와 바람이 만든 장맛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은 해발 350m에 자리잡고 있다. 볕 좋은 곳에 위치해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이 시원하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장을 담그고 덧장을 대면 그 다음 작업은 자연이 맡는다. 맑은 공기와 햇볕과 눈과 비와 바람을 맞고 숨을 쉬면서 항아리의 장이 익어간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2007년 콩 작목반을 꾸린 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지인들을 초청해 장 담그기 행사를 갖고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한 것이었다. 서서히 단골이 생겼다.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에서 판매하는 된장은 5년 이상 숙성된 된장과 간장이다. 상황·차가버섯 달인 물로 만드는 메주는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여전히 짚을 깔아 메주를 띄운다.

"메주는 사이사이 짚을 넣고 3단으로 올려요. 작업실이 곧 숙성실이지요. 일주일이 되면 메주가 뜨기 시작하는데 그대로 놓으면 속에 있는 것이 썩으니까 계속해서 바꿔줘야 해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박해순 대표는 된장 곰팡이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푸른색을 띠거나 검은색을 띠는 곰팡이는 해롭다는 것이다. 다만 짚이 닿는 부분이 까맣게 되는 곰팡이는 예외이며, 메주 속 검은 곰팡이는 썩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 뜬 메주는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좋은 장을 얻으려면 물과 소금이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재료로 만드는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의 심순섭 할머니 된장은 약된장에 3년마다 한 번씩 덧장을 대고 있다. 된장도 오래되면 수분이 날아가 딱딱해지기 때문에 겨울에 상황버섯 끓인 물에 콩을 죽처럼 쑤어 덧장을 한다.

덧장을 할 때는 소금 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할 수 있어 겨울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봄이 찾아오면 항아리에 담긴 된장의 위와 아래를 모두 꺼내 치대어 다시 넣어준다. 된장은 3년에 한 번, 간장은 해매 덧장을 해야 한다.

상황버섯물 달이기

#된장도 5년 묵히면 화장품?

"된장은 2~3년 묵은 것이 제일 맛있어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5년 이상 된 된장만 파는 것은 약리성분 때문이에요."

두리두리영농조합법인의 약된장은 보약을 만든다는 신념 속에 만들어진다. 박 대표의 사업장에서 가장 오래된 된장은 30년 됐다. 일반 된장에 비해 가바(GABA) 성분이 무려 74.6배 많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한방과학팀 박준성 연구원은 암 환자가 먹으면 암세포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되는, 세포 재생을 돕는 ODI(O-Dihdroxyisoflavone) 성분이 콩이나 일반 된장에는 없지만 5년 이상 묵힌 된장에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화제를 모았다. 상황버섯과 차가버섯 우려낸 물로 담아 5년을 숙성시킨 심순섭 할머니 된장과 간장은 이런 효과로 인해 소비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계약 재배한 우수 농산물을 활용한 심순섭 할머니와 박해순 대표의 된장과 간장은 2012년 국가대표 식단제품으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고, 그해 런던 올림픽까지 갔다. 2013년에는 세계유기농업학회와 독일BCS로부터 유기된장, 유기간장 인증을 받았다.

눈길에 넘어져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의 혈액 나이는 마흔 여섯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심순섭 할머니표 된장과 간장은 딸의 정성 속에 여전히 항아리에서 숨을 쉬고 있다. 박 대표는 없어서는 안될 삶의 바탕이었던 된장을 사회 통합의 매개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새터민, 결혼이주여성, 탈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체험공간을 꿈꾸고 있다. 단편적인 체험을 넘어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심어 줄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박해순 대표는 유기·친환경·무농약콩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이 마음까지 건강하게 해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 김정미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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