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터키의 6시간 천하 쿠데타, 정부 고위층의 국민 동물비유 발언, 사드배치를 둘러싼 극한 대립 등의 빅이슈가 근래 터졌다. 그런 사건마다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는 주로 "민주주의"이다. 결국, 진영에 따라 그 의미를 자신에 맞게 해석하여 자신들만의 "자기식 민주주의"를 관철하고자 하는 양상을 보이곤 한다.

하긴 북한도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민주주의를 해석하여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니, 그보다 정도가 덜한 다른 조직이나 단체에서는 민주주의를 자기에 입맛에 따라 해석하여 이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로 생각된다.

특히 절대빈곤과 군사독재시절을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이 그 어느 나라 보다 크다. 이런 자부심에 편승하여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앞세워 곧잘 대중을 설득하곤 한다.

민주주의를 짧고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일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물론 당시에도 링컨의 반대진영의 사람들은 링컨이 말한 국민에서 흑인을 제외하면 그의 생각에 동의하였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진리의 범위가 달라지게 된다.

아마도 국민을 동물에 비유하여 문제가 된 정부 고위층도 나름 민주정치가 중우정치로 퇴색할 것을 염려하였을 따름이지 감히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부정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는 민주주의의 '민'을 상위 엘리트로 생각하는 등 우리같은 평민과 다른 민주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필자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아전인수 해석은 최근 터키 쿠데타 사건에서 명확히 들어났다. 쿠데타 세력은 물론이고 현직 대통령 역시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주 사드배치 결정 역시 다수결 투표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바탕되었을 터이고, 성주 주민 또는 다른 이유로 사드도입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배치반대가 민중의 목소리임을 강변한다. 결국 모두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의 구도이다.

흔히들 민주주의라고 하면 다수결을 떠올린다. 물론 다수의 선택이 존중받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기는 하다. 하지만,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 본질이라는 생각은 무척이나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는 본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의 컨센서스를 찾아감으로써 구성원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전국민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지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다수결=민주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수결은 구성원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전체의 실질적 의사를 형성할 수 없는 불가피한 한계상황에서 차선의 국민의사를 확인하는 수단이 될 뿐이지 대화와 타협을 건너뛰고 다수가 소수를 탄압하거나 일방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다수의 횡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같은 무자비한 학살자의 배후에는 십중팔구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다수가 있다. 그가 당시 독일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등에 업었다고 하지만, 그가 행한 소수 유태인 학살이 민주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정권이 한 국가를 이끌고 있다는 이유로 민주주의가 관철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서 유효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전제조건의 충족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 전제조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수와 의견을 달리한 소수의 보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동질하지 않은 공동체 내에서 이익을 보는 다수의 결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가 있다면 그 다수의 결정에 앞서 충분한 대화와 타협이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실현수단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수결에 의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서 그 다수의 결정은 국민 전체의 자유와 평등을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끝으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의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을 걸고 반민주를 행하는 일은 다수의 폭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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