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권택인 법무법인 충청변호사, 법무부 교정자문위원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에는 간통을 저지른 자들에게 간음(adultery)을 의미하는 문자인 'A'를 주홍빛으로 새겨 넣는 형벌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장치로 등장한다.

시대에 따라 죄에 대한 평가가 다르고, 그에 따른 형벌의 종류나 크기는 달라지지만, 적어도 근대적 형법체계를 갖는 국가의 시각에서는 간통한 자의 신체 주요부위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형벌은 신체를 훼손하고 범죄를 필요이상으로 공시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가혹하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근대적 시각에서 형벌은 범죄자가 죄값을 치르게 하여 가해자를 벌하고 피해자의 복수를 국가가 대신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범죄자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건전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는 이른바 재사회화에 더욱 큰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죄의 표식을 몸에 새겨 범죄자임을 공시하도록 하는 '주홍글씨' 형벌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범죄자 낙인을 찍어 범죄자의 재사회화를 막는 것으로 현대 교정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 범죄가 세상에서 잊혀야 새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징역살이 하다가 만기 출소를 앞둔 재소자들에게 스마트폰이 허락되면, 대부분 재소자들은 가장 처음 자기 이름을 검색해 본다고 한다.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에 앞서 자신의 어리석었던 잘못을 세상이 기억하는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한 두려움이 그들의 원만한 사회복귀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때문에 이른바 '잊혀질 권리' 혹은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스페인 변호사 곤잘레스는 인터넷 구글 검색창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16년 전에 자신의 집이 경매에 나왔다는 기사가 나오자, 구글에 대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여 이내 핫이슈로 부상하였다. '잊혀질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어 포털에서 광범위하게 게시글 혹은 기사가 사라지면 이를 게시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및 기사를 접하게 될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기는 하였다.

결국 '잊혀질 권리'는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까지 가게 되었는데, 재판부는 디지털 주홍글씨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당사자가 원치않는 검색 결과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2개월간 8만건 이상의 포털 게시글 삭제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소설 '주홍글씨'로 돌아가 보자. 당시 청교도 사회에서는 간음한 자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간음으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이를 몸으로 공시하여 주위 사람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200여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에서는 객관적으로 너무 가혹한 그리고 반인권적인 처사임이 분명하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들이 미처 발견못한 인권을 계속해서 발견해 낸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끼고 살면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자신의 흑역사가 기록된 게시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 상을 공기처럼 둥둥 떠다니게 두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야만의 소치라고 평가되지 않을까? 프랑스에서는 최근 "구글이 잊힐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며 구글에 대하여 1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죄값 이상의 멍에를 지고 남은 생을 살아야하는 것은 과잉 형벌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시점에서 그의 흑역사가 새 삶에 방해되지 않도록 잊혀지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형기종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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