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권택인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법무부교정자문위원

청주에서 산업현장 질식사고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산업재해 뉴스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통계를 들추어 보니 OECD가입국 중 우리나라가 산업재해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에 관해서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국에 비해 22배가량 높은 산업재해 사망율을 보이고 있다. 산업안전관련 학과의 모 교수는 영국에 태어나는가 한국에 태어나는가의 차이로 산재로 사망할 확률이 22배가량 차이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했는데, 필자도 깊게 공감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분식된 수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산업재해 통계잡기 위해서는 피해 근로자가 산재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근로자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 유사 근로자들이 정규직에 비해 많고, 이들의 업무상 재해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대법원에서 선고된 야쿠르트 배달원 사건을 보아도 그 분들은 개인사업자이므로 근로자로서 보호할 수 없다고 하니 수많은 야쿠르트 배달원이 배달도중 다치거나 사망하여도 산업재해로 산입되지 않다. 이런 실질적 산업재해를 감안하면 사실상 산재율은 알려진 것에 몇 곱절에 이를 수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0대 기업 중대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총 245명이고 그중 영세 하청업체 근로자가 212명이었다고 한다. 산업재해로 하청업체 근로자 수백 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동안 원청 대기업에 대한 처분은 대부분 불기소나 기소유예, 벌금형에 그친다. 그리고 산업재해 피해자의 목숨값이나 신체손상의 대가로 푼돈이 건네진다.

이러한 부조리는 기업의 하청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청은 기업에서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업무를 해당분야에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외부업체에 위탁해서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고효율에는 관심없고 최저가 입찰로 단기적인 비용절감 효과만을 노린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른 업무에 비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큰 위험을 동반하고 있는 고위험 업무를 무분별하게 최저가 하청을 주게 된다면 원청업체는 사업에 대한 이득은 쉽게 취하면서 그에 따른 위험은 영세업체로 전가시켜 사업이 감당하여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최저가 업체로 하여금 비용문제로 안전에 눈감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청업체는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여도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고, 나아가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의 민형사상 책임은 경미하다. 하청업체 사업주는 원청업체의 무관심속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의무 이행비용과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비용을 비교하여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의 위반행위와 인과관계 있는 손해만 사업주가 배상하면 된다. 그마저도 피해 근로자가 산재급여를 받게 되면 배상액에서 그만큼 공제가 된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는 위반의 정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피해자의 손실액수와 무관하게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에선 안전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비용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비용보다 저렴하다. 그런 까닭에 사업주가 안전에 관한한 돈을 아끼지 않게 된 것이다.

청주의 사고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이번 산재로 사망한 두 분은 정화조 설비에서 들리는 피해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를 구조하기 위해 정화조로 들어갔다가 이 같은 변을 당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만일 그들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찌되셨을까 생각해본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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