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변호사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변호사

추석 즈음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안내장을 받아왔다. 속칭 김영란법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명절 선물을 수수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긴 안내장이었다. 사실 필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이들 담임 선생님과 1년에 한번 가량 공식적인 학교행사에서 간단한 인사정도만 하고 지내던 터이고, 주변에서도 촌지같은 것을 건네는 사례를 현재는 들어보지 못하였기에 그런 안내장을 받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의아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고, 직무수행, 사교, 부조 목적 등에 한해 3만원 미만의 식사 대접, 5만원 이하의 선물, 10만원 이하의 경조사비(축의금, 조의금, 화환, 조화 등)를 허용하고, 이 금액을 넘어가면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된다.

김영란법은 올해 추석까지는 아직 발효되지도 않았음에도 제한된 가액에 밑도는 친구들간의 의례적인 선물 역시 "괜한 오해사지 말자."는 생각으로 반송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 역시 필자의 오랜 친구인 공직자의 아버지가 사과 과수원을 경작하고 있어서 사과 출하철이 되면 싼값에 사과를 박스로 사서 필자 가족은 물론 지인들과 나누어 먹고는 하였는데 이제 그마저도 친구들에게 괜한 누가 될듯하여 싼값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어야 할 판이다.

김영란법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들은 이제 공무원인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환심을 사기 위하여 100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면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받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일부 독자들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라면서 코웃음치겠지만, 김영란법은 바로 그 코웃음칠만한 연인간의 선물사건에서 입법추진되었다.

많은 독자들도 아마도 벤츠여검사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연인관계에 있던(혹은 그렇게 주장하던) 변호사와 여검사가 있었는데, 변호사가 여검사에게 벤츠, 명품 가방 등을 선물하였다가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뇌물죄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은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관계가 없이 마음의 증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는 점을 주장하였고, 수사기관에서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여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재판끝에 무죄로 판결되었다. 현행 형법상 뇌물죄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어야 유죄로 인정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변호사와 검사라는 업무로 얽힌 특별한 신분자들의 부적절한 거래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였고, 이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관계 상관없이 100만원이라는 상한을 넘게 되는 선물을 수수하면 형사처벌하는 김영란법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이니, 위에 "설마"라고 받아들일만한 일로 처벌받는 공무원이 생기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물론 필자도 김영란법이 추구하는 부패청산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부패행위를 일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행위 근절을 이유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국가의 감시망 아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패 관행을 막는 방법으로 온국민을 상대로 엄포를 놓는 김영란법같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공공기관 내부의 통제기준을 만들고 철저한 내부단속을 통해 공무원들이 스스로 그 규범을 지키도록 만들어 공직 내부로부터 서서히 변화하게 만들고, 괜한 호의가 공직에 있는 지인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될 수 있음을 대국민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선량한 대다수의 하급공무원들의 인간관계 파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사회문제가 될만큼 황당한 비위는 고위층에서 발생하였음에도 김영란법의 제정으로 인해 실재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은 오늘은 내가 사고, 내일는 네가 사던 선량한 하급관료들과 그들과 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아닌가.

법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유효적절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제대로 된 규범력을 가질 수 있다. 오로지 금액으로 선을 그어 형사처벌로 다스리는 것이 유효적절한 최후수단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 외에 그 예를 찾기 힘든 불고지죄를 둔 것은 과잉입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긴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을 선언한 마당에 김영란법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국민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만 하면 될 일이기는 하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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