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배경환 변호사

배경환 변호사

최순실게이트로 명명된 청와대발 국기문란사건을 접하면서 몇 가지 소회를 적어 본다. 법과대학에 입학하면 통상 1, 2학년 과정에서 헌법학을 공부하게 되고, 헌법의 기본원리 또는 기본 이념이라는 제하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내용을 배운다.

법의 지배는 법치주의와 대동소이하게 표현되는 영미법상의 개념으로 그 반대는 인의 지배라고 할 수 있다.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규범을 마련하고 모든 국가작용을 이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객관적 규범에 의한 지배를 하게 함으로써 지배자의 전단적인 권력행사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평화로운 인간공동체 생활의 전제가 되는 정의로운 생활환경이 조성될 뿐 아니라 국가의 권력작용은 순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지배원리는 근대 절대군주정에 의하여 크게 훼손된 이후 불란서혁명을 필두로 한 각국의 시민혁명에 따라 많은 목숨과 맞바꾼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포기할 수 없는 기본가치이다. 그렇다면 인의 지배는 무엇인가? 법의 지배가 확립되기 전 근대 절대주의 군주정시대에 최고 통치자이며 초월자였던 군주가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없이 그 자의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개념을 일컫는다. 당연히 피치자인 국민의 안녕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며, 지배자와 인근 무리들의 안녕과 탐욕만이 숨어 있을 뿐이다.

최근 청와대 사태를 보면서 왜 인의 지배라는 개념이 떠올랐을까? 그 동안 언론을 통해서 수없이 들었던 불통, 독선, 아집, 십상시, 삼인방, 비선실세 등의 용어를 생각하면 그 대답은 분명해 보인다. 그 동안 청와대는 법의 지배원리가 작동한 것이 아니라 인의 지배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졌던 것이고, 그 끝이 최근에 곪아 터진 것이다. 법의 지배는 근본적으로 신뢰의 원리이기도 하며, 이는 예견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통치자의 그때그때 자의적인 생각과 알 수 없는 의사결정구조가 아니라 명확하고 객관화된 기준에 따라 예측가능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이 분개하고 허망해 하는 이유는 이런 예측가능성을 훨씬 넘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통령의 아들, 형, 동생, 동서 등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 하다가 감옥에 가는 일들을 매 정권마다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번 청와대 사태는 이전 정권에서 일부 친인척의 호가호위가 문제되었던 사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고 상상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단순히 최순실이나 그 주위 사람들의 호가호위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본인이 직접 이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자인한 바 있고, 최근 언론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내용들을 귀동냥해보면 대통령과 최씨 일파가 공동정범 내지는 교사, 방조의 형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가 없다.

비록 대통령은 민심 수렴 차원에서 물어봤다고 변명하긴 했지만 드러나는 내용들이 단순한 민심수렴차원을 넘어섰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법의 지배라는 소중한 가치가 농락당한 것이고 단순히 최씨의 전횡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허망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길 바라지만 더 소름끼치는 일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납득하기 어려웠던 인사스타일이나 국정운영스타일에 대한 궁금증이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둘씩 퍼즐이 맞듯이 풀려간다고 생각하니 더욱 참담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사태가 발생하고 난 후 대통령의 문제 해결 노력도 우리에게 실망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 계산과 흥정으로 비춰지는 문제 해결책의 제안, 위기상황에서 조차도 누구와 어떤 방식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 깜깜이 의사결정이 계속되고 있는 등 국민들은 더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더 이상 붙잡아야 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다. 그저 진솔한 사과를 하고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힌 후 조용히 2선으로 후퇴하는 길만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고, 국가적인 위기를 넘기는 방법인 것이다. 법의 지배가 아닌 인의 지배가 보여준 처참한 결말이다. 법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나라, 정의가 살아 숨쉬는 내 조국의 미래를 그려 보며 더 늦기 전에 법의 지배로 회귀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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