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지적장애가 있는 9살 소녀는 아침 일찍 등교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머리손질을 하던 도중 넘어지면서 욕조 모서리에 머리를 크게 다쳤다. 30대 계모가 말을 듣지 않고 운다며 소녀의 가슴을 손으로 밀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계모는 가까스로 일어난 소녀가 방에 들어가 누워있는 동안 하루 종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학교에는 "아이가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연락했으면서도 소녀를 방치했다. 12시간 뒤 아이는 외상성 뇌출혈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소녀가 홀로 방에서 겪었던 육체적인 고통과 깊은 소외감이 느껴진다. 계모가 일찍 병원으로 데리고 갔거나 119에 구조요청을 했다면 소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청주시 오창에서 발생한 9살 소녀의 죽음은 생명경시풍조와 삭막한 세태가 낳은 비극이다. 최근 몇 년 새 충격적인 아동폭력사건이 잇따르면서 전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켰지만 아동폭력으로 인한 비극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경찰은 소녀를 장시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계모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했다. 당연한 귀결이다. 가정 내에서 발생한 9살 소녀의 죽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이들이 상상하기 힘든 가정폭력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미디어에 노출돼 사회적인 쟁점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인륜을 찾기 힘든 황량한 세태다. 최소한의 인격과 인성도 갖추지 못한 철없는 어른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이 때문에 아동폭력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방안이 절실하다.

오창 9살 소녀의 죽음은 계모 때문이지만 아동학대 가해자는 친부모 비율이 훨씬 많다는 점도 심각한 현상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1만27건의 아동학대가 발생하는데 이 중 친부모의 학대가 7742건(77.2%)에 달했다. 반면 계모·계부와 양부모 비율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아동학대 신고 가운데 이웃과 친구, 친인척이 신고를 한 경우는 12%에 불과했다. 경찰이나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신고에 비해 크게 적었다. 부모는 아이를 폭행하는데 주위사람은 수수방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해야할 시점이다. 아동학대는 폭력의 대물림과 행동장애등 가해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훈육문제도 많지만 핵가족화 현상과 빈곤 및 양육부담으로 인한 동기도 만만치 않다. 대가족 시절엔 조부모와 친인척이 젊은 부모에게 과잉행동에 제동을 걸거나 힘들 땐 양육을 도왔지만 산업화와 황금만능주의가 심화되고 가족구성이 단촐 해지면서 젊은 층이 아이 양육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오창 9살 소녀의 계모처럼 다친 아이를 방치하고 사후처리를 기피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려고 술에 의존한 것은 나이만 먹었지 정서적으로 미성숙하고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국민적인 공분(公憤)을 사고 있지만 우리사회가 건전하고 건강한 윤리의식과 공동체의식이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동학대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아동을 사랑으로 끌어안고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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