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배경환 변호사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10일 박근혜 전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10여 일만에 서울중앙지검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 동안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고, 헌법재판소로부터는 탄핵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받고 두문불출해왔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부터 탄핵과 검찰에 출석하기 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박 전 대통령은 과연 국가최고지도자로서 품위와 품격, 책임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고 국익 차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대통령은 선거제도의 공정성이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의 정당성을 확보한 국가 지도자이자 통치자이며 국가원수로서 그 권한과 지위가 막대할 뿐 아니라 그 책임 또한 무겁다. 대통령이라는 용어 자체에 그 권위가 녹아있는 것이고 제도적으로 헌법과 각종 법률이 이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필자가 오늘 언급하고 싶은 대통령의 품위나 품격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규정된 바 없다. 지금까지 많은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에 또는 퇴임 후에 수사를 받은 바 있고, 이 과정에서 제대로 품위나 품격을 지켰던 대통령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여지지만 이번 박 전대통령의 경우 특히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이란 막중한 직책을 수행하다보면 이런 저런 불미스러운 일과 구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정당정치가 발달하여 여와 야라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지는 국가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다만 구설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지혜는 지도자들마다 크게 달랐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죄송하다'고 했고, 노무현 전대통령은 '면목이 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더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소위 골목길 성명을 통하여 깡패집단에서나 있을 법한 투로 강하게 국가권위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 며칠 후 체포돼 검찰청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질 무렵부터 박 전 대통령의 반응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최진실 국정농단의 씨앗은 이미 정윤회 문건유출사건때부터 태동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정윤회 문건사건이 터졌을 때 박 전 대통령은 몇몇 부하직원들의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하였고, 사안의 진상을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급기야 젊은 경찰관은 자살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언론의 집요한 보도에 대하여 박 전대통령은 단 한 번도 진상을 파악하여 국가가 좌초하지 않도록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었고, 결정적인 단서인 태블릿이 나오고 나서야 책임을 인정하였지만 그 책임인정이라는 것이 매우 부족하다 못해 허위가 숨어있어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더니 급기야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의 이권 추구를 몰랐다" "개인적인 사익 추구는 없었다"고 강변하더니 한 인터넷방송에 등장하여 "뇌물은 엮은 것이다" "어거지를 쓰는 것이다"라는 등의 막말수준의 대담을 진행하였다.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했을 때에도 박 전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며 사실상 불복 선언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닉슨 대통령도 끝까지 버텼다. 수족 69명이 구속이 되면서도 닉슨은 끝내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발뺌을 하였고 '나는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8대0의 전원일치판결로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닉슨은 적어도 보수성향인 한 두 명의 대법관이 자신의 편에 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그러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닉슨은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하야의 길로 나아갔다.

배경환 변호사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억울한 면이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보수진영을 대변하여 정치적인 행보를 갈 수 도 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를 대표했던 국가 지도자로서의 품위와 품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닉슨의 마지막 연설에 그 답이 있지 않나 싶다.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라는 단 한 마디의 표현이다.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자랑스러이 말하던 박 전 대통령의 말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갖출 때 최고지도자로서의 품위와 품격이 인정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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