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충청'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헌법재판소 (자료사진) / 뉴시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술을 기울이다가 밥줄 끊어질 위기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필자가 법률가로서 짐짓 법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장난스런 우월감을 드러내곤 하였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법률 용어사용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상황에 맞는 용어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상당히 정확해졌다. 법률 용어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면 유사용어간의 미세한 차이점을 구별하면서 적절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서구식 법제도가 일본 등을 통해 도입되는 과정에서 더욱 어렵게 만들어진 탓도 있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다. 다만, 그들은 그저 자기 분야에서 성실히 일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자녀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철학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는 평범한 중산층의 가장들일 뿐이다. 그런 친구들이 법률분야에 비범하게 변했다. 필자의 앞에서 헌법과 법률을 논한다. 그것도 그럴싸하게 말이다. 우리나라를 들었다 놓은 이번 탄핵사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국민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이제껏 자신들의 생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지 못한 정치나 법과 같은 난해한 분야가 결국은 자신과 우리 후손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번 탄핵정국은 방송사들로 하여금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헌법과 법률에 기초해 향후 전망에 관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설정하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법을 가르치게 만들었고, 사안에 따라 양측이 첨예하게 토론하게 한 후, 이를 사회자가 재정리하면서 매우 깊은 법률지식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송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 그리고 법률의 해석방법을 두고 상호간 논쟁을 통하여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은 이상적인 법학교육 과정에서 추구하는 것들이다. 결국 전국민이 오랜 기간 동안 미디어에서 검증받은 변호사를 통해 그것도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이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러니 법분야면 필자가 있으니 알아서 무엇하냐며 굳이 알려들지 않았던, 그래서 어쩌면 법지식이 부족했던 필자의 친구들조차 큰 어려움 없이 고품격 법률 대화를 나누는 것쯤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게 된 것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필자가 굳이 헌법 제1조에서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선언'하고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규정을 가졌음에도 반민주, 반공화를 행하는 정권을 가진 국가도 많고 우리 현실도 객관적으로 헌법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만나기 마련이어서, 반민주 반공화의 압제를 극복할 만한 소양을 갖지 못한 국민은 결국 그에 합당한 정권을 갖게 되기에 국정운영의 현실을 두고 압제 정권만 탓할 수도 없다. 즉, 민주와 공화를 규정한 헌법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자질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민주공화국 규정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고 현실임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권택인 변호사

물론 국민으로서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의 수준이 그 정도에 그치고 있었음을 확인한 까닭이지 슬픈 가정사를 가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연민 때문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견해는 다를 수 있고 그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권장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전제주의 국가의 왕의 몰락으로 받아들이면서 비분강개하는 듯한 태도를 가진 분들이 보인다. 그들이 과연 국민이 주인되고 전제왕정을 부인하는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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