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필자가 열심히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EBS의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회에 상상을 초월하는 극도로 힘든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밀착 촬영하여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경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그 기획의도가 있다고 한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겠지만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힘든 것은 힘든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힘들때 더 힘든 직업을 보면서 위안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지하철 터널공사를 하는 분들, 하루도 맘편히 지나치지 않는 긴급상황에서 일을 하는 응급실 의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요즘은 '극한직업'을 보면서 위안의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지금도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직업종사자들은 상당히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작진도 처음 의도한 만큼의 극한 상황의 직업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제 극한에 대한 필자의 감수성이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직업이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어서인지, 요즈음에는 필자가 더 극한직종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필자에게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는 보통 100통은 가뿐히 넘는 것 같다. 솔직히 저녁에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가끔 내가 대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몽롱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저녁이 되면 사용해야 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어..어.."하며 엣지 없는 상담을 할 때도 있다. 누구는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에서 전화가 오면 차라리 받지 말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전화가 켜져 있으면 무조건 씩씩하게 받아야 하는 직업병(?)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머리가 물먹은 스폰지처럼 무거워 적절한 상담을 못해줄 만큼 정지해 버린 날은 업무용 전화기의 전원을 꺼놓고 가족으로부터 오는 전화만 받기 위해 전화기를 하나 더 구매하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변호사에게 밤낮없이 전화하는 것은 그만큼 급박하기 때문일 것이고, 평소 배운 것을 가지고 주변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것은 무척이나 보람찬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변호사가 사소한 법률문제라도 답변하는 것은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같이 기계적인 일은 아니어서 단지 보람만 가지고 그들의 급박함에 응답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단순한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사는 그가 설명한 사실관계를 듣고, 그 사실관계에 적용될 법령을 생각하고, 다시 그 법령에 맞게 사실관계를 재구성하고, 추가하여야 할 사항을 확인하여야 하며, 유의하여야 할 점에 대하여 설명하려면 계속 정신노동을 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비를 동반한다.

그것까지는 변호사의 숙명이라 치자. 일전에 지인의 캐쥬얼한 전화문의에 필자 역시 그가 설명한 간략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간략한 답변을 준적이 있다. 물론 간략한 답변이었지만 앞서말한 바와 같은 복잡한 정신노동 과정은 필요했다. 한참 후에 그로부터 사건에서 매우 불리해졌다는 불평을 들었고, 자초지종을 추가로 설명 듣는 과정에서 과거 필자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호의가 칼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필자가 '극한 직업'을 보면서 가장 극한이라는 생각을 가진 직업은 땅속의 막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정신세계에도 막장이 있다면 끊임없이 머리가 멈출 때까지 지식노동에 내몰려 있는 변호사 직종이 아닐까 한다. 간혹 순전히 직업적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에 사망하는 법조인 소식도 들린다. 그럼에도 변호사들은 입만 가지고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이 간혹 있다. 그런 시선을 느낄 때마다 '극한직업'에서 법조인의 삶을 소개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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