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장 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언제나 무심천은 조용히 물 흐르고, 우암산 해넘이도 어제 같은데 벌써 필자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으로 근무한지도 어느덧 30개월이 흘러갔다. 재단의 사무총장은 격년제로 치러지는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당연직 사무총장이며, '청주한국공예관'의 관장업무도 맡아서 수행해야하는 직무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다달이 급료를 받으려니 송구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청주의 작가들 그리고 문화예술인과 보낸 시간은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이제 70여일 후면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가 문을 연다. 청주공예 20년의 역사를 대변하여 보여줄 비엔날레 준비에 밤낮 없는 스텝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시민들의 기대도 크고 걱정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10회 비엔날레에서는 달라진 것도 많다보니 말들도 무성하다. 왜 공예비엔날레에 전통공예가 빠졌나 라든가 '11인의 청주시민 공동감독' 제도도입에 공예분야감독이 없느냐라는 의혹들이 많다. 언뜻 보기에는 타당해 보이나 틀린 지적이다. 필자는 2015년 외부 초빙된 '예술감독'과 '전시감독'을 중심으로 9회 공예비엔날레를 치렀다. 돌이켜보면 지난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장단점을 분석하고 파악해 보았다. 때로는 불합리한 행정적, 제도적 장치로 인해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지금 10회 비엔날레를 준비 절차를 진행하면서 9개 국가의 세계관 도입과 유치과정의 업무와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공예예술산업' 분야를 재조명하는 글로벌 실험무대를 구성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이, 지역에서는 전통공예분야 명인이나 명장 무형문화재 중심의 공예인들 사이에서 '섭섭하다'는 지적들이 표현되어 언론기사화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인식부족과, 조직위의 홍보 표현 부족의 문제이다. 20년의 역사와 10회를 맞이하는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야말로 전통공예 중심의 기획이며, 장인들의 일생을 통하여 이룩한 전통공예 분야를 찬양하고 재조명하는 비엔날레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공예 워크숍'은 한번 쉰다. 지금까지 전통공예 워크숍은 지역의 몇몇 장인들의 공예시연을 중심으로 관람객 체험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체험 기회를 준 행사이다. 의미 있고 재미있으며, 관객들에게도 유익하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행사는 대부분의 지역 축제행사의(보은 대추축제 등) 단골메뉴이다. 체험행사에서 명인 명장들에게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여, 수익을 창출해 창작활동에 보탬을 주는 것이 이번에는 한번 쉰다. 왜냐하면 젓가락페스티벌이나 '공예디자인창조벨트'사업을 통해 더 많은 기회가 시민들에게 노출되었으며, 공예도시 청주에서 전통공예 워크숍과 현장 시연기회는 이제 장인들의 작업공간을 중심으로 상시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번 공예비엔날레에서의 전통공예는 어디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 그 첫 번째로는 특별기획전에 서다. 기획전은 뉴미디어 기술을 통해서 경험하는 전통공예의 접근이다. 전통분야의 명인 명장들의 예술성과 심미성은 물과 불, 나무, 흙, 그리고 금속과 같은 모든 재료는 자연의 물성 위에 예술가의 혼과 손 그리고 일생을 바치는 고뇌의 결과물임을 입증하는 대목을 전통공예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공예품을 진열하고 해설가의 설명에 의해 바라만 보는 전시형태에서 벗어나 공예가 인류의 생활전반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비엔날레 고유의 목적에 재미있고, 다양한 연령의 관객에게 감동을 증가시키는 실험무대를 이번 10회 행사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그리고 청주시와, 보은군, 괴산군, 진천군, 증평군 등 충북의 공예디자인 창조벨트에서 보여준 지역의 전통공예 작품들이 실재로 전시되고 판매에까지 연결 될 것이다. 정의(正義)를 한마디로 정의(定義)하기는 어렵다.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먼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지기 마련이다. 필자는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 기준이 있다. 첫째, 나에게 이익이 없어도 다른 이에게는 이익이 되는가? 둘째, 나에게 이익이 되나 다른 이에게 피해는 없는가? 셋째, 나에게 이익이 되고 다른 이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인가? 이다. 내게는 이익이 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결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다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그것에 따른 피해자가 있다면 그 또한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있어야한다.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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