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충주 기부천사 이진용 아성기업 대표
40년 동안 학용품·먹거리·생필품 등 무수한 지원
매년 장학금·기탁금…지금까지 25억원 이상 쾌척
충북도민대상·장관상·국민포장·충주시민대상 수상
나눔 그랜드슬램 달성…'봉사에 중독된 사람' 정평

이진용 대표가 충주시민대상 봉사부문을 수상하고 조길형 충주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사람들은 한개를 얻으면 두개를 갖기를 원하고 두개를 갖게되면 다시 세개를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에 우리 대부분은 공감하고 있다.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은 내 주머니가 가득찼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베풂'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남들과 나누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가진 자들이 많지만 남을 위해 선뜻 내 주머니를 털어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면서 묵묵히 '베풂'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충주에서 건축자재상 '아성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용(67) 사장이 지난 8일 열린 충주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충주시민대상 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이진용 씨가 봉사상을 수상한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속적인 봉사를 실천해 충북도민대상과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으며 국가로부터 국민포장까지 받았다.

이번 충주시민 대상 수상으로 봉사부문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로부터 봉사부문 대상을 받은 사람은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만 아니다. 충주지역 각 읍·면·동과 사회복지단체 등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그의 모교인 충주고등학교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런 충주고인상'까지 받는 등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봉사의 손길을 내밀어 봉사 하면 으례껏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의 봉사는 비단 넉넉함 속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친구의 운동화가 낡아 발가락이 나온 것을 보고 용돈을 모아 친구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당시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를 경험했다.

이 씨의 본격적인 봉사 시작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76년 매형이 운영하는 건자재상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제천에 있는 송계초등학교에 자재를 납품하면서 시골 어린이들의 소박한 모습에 이끌려 매년 학용품 등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학교에 교문과 담장이 없는 것을 보고 선뜻 2년 치 월급을 털어 담장과 교문을 세워 줬다.

이진용 대표

그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

이후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981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3개월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로 있게 된다.

교통사고 여파로 사업을 접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3평짜리 비좁은 단칸방에서 부인과 아들, 딸, 네 식구가 살았지만 자신의 월급 50만 원 중 20만 원을 떼어내 시로부터 추천받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월급쟁이 생활로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월급을 쪼개 남을 돕다 보니 한 번도 월급봉투를 통째로 집에 갖다주는 일은 없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씨의 딸은 당시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열심히 일했다. 건자재상에서 근무한 경험을 밑천으로 지금의 '아성기업'을 열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봉사의 폭을 넓혔다.

매년 충주지역 각 읍·면·동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거액의 성금과 쌀, 고구마, 연탄 등을 전달하고 충주시에도 거액의 기탁금을 전달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저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 갑작스런 IMF한파로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타던 승용차를 팔고 값이 싼 LPG차로 바꾼 뒤 여기서 절약한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줬다.

또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교육청에 300만 원씩 지원하고 충주보훈지청에도 500만 원씩 지원하는 등 매년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장학금으로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액수를 지원했다.

이 씨가 지금까지 지원한 사람이나 기관은 일일이 거론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6년 그의 모교인 충주고등학교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선뜻 자신이 5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했던 그가 그저 술김에 내뱉은 말 정도로만 흘려 들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다음날 아침 충주고 총동문회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5천만 원을 건넸다.

이 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신도회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불교용어 가운데 '주상보시'라는 말을 신조로 삼고 있다. '자신이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남에게 베풀고 지원한 것에 대해 한 번도 셈을 해보지 않았다. 계산하면서까지 남을 도와준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원한 금액이 25억 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씨는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데는 큰손이지만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투자는 철저히 인색한 편이다.

충분히 먹고 살만해진 지금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스무평 남짓한 연립주택에서 부인과 둘이 살고있다.

지금까지 휴일조차 잊은 채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사업이 잘돼야 남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년 전에는 회사 직원들이 "이제 사업도 안정이 됐고 회사 대표로서 남들이 보는 눈도 생각해야 한다"며 간곡히 권유해 모처럼 중형승용차를 구입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만에 구입가격의 3분의 2정도 밖에 안되는 가격에 차량을 다시 되팔아 어려운 학생들과 보훈가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지원했다.

당시 회사에 자금이 부족했지만 매년 지원해 오던 지원만큼은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형승용차를 타면서 마치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며 "내가 배불리 먹고 쓰면서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히 '봉사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표현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의 헌신적인 봉사 뒤에는 부인 윤영숙(64) 씨의 내조가 숨어 있다. 천성이 착한 윤 씨는 통 큰(?)남편으로 인해 항상 풍족하지 못하지만 한 번도 불만을 하지않고 묵묵히 남편의 뜻을 따르고 있다.

평소 애주가로 소문난 이 씨는 최근 술을 끊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자신이 마시는 술 한잔을 줄이면 끼니 걱정을 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밥 한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40여 년 간 계속돼 온 그의 봉사릴레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데 의심하지 않는다.

이진용 씨는 "베푼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라며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남들과 함께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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