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21. 인도 - 바르깔라, 코치, 뭄바이

뭄바이의 도비가트

후후커플은 ?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고아에서 일주일간 같이 지내던 일행들과 헤어지고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아침에 눈뜨면 매듭을 꼬아 팔찌도 만들고, 삼계탕, 매운탕 등 먹고 싶었던 한식을 실컷 만들어 먹기도 했던 시간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고아 해변에 앉아 생과일 주스나 맥주를 마시는 게 다였다. 그렇게 정들었던 친구들이 떠나고 나니, 더 허전했다. 각자의 모든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서의 만남을 약속했지만, 허한 마음을 채우긴 힘들었다. 우리는 남은 인도여행을 잘 마무리 짓기 위해 남쪽 끝 바르깔라(Varkala)까지 내려갔다.

바르깔라의 절벽위에서 내려다본 해변. 바로 앞이 아찔한 낭떠러지다.

바르깔라는 깎아낸 듯한 아찔한 절벽 바로 앞에 있는 긴 해변이 유명한 곳이다. 절벽 위엔 식당, 상점, 숙소 등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 절벽 앞의 바다도 아니고 모래사장이 있다니,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던 풍경이었다.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도 주위를 둘러보면, 거대한 절벽에 둘러 안겨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인도인에게도 유럽인에게도 매력적인 바르깔라의 절벽 위 마을은 다른 인도에 비해 물가가 비싼 편이었다. 우리 예산에 맞는 숙소를 고르느라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딸린 방에서 묵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가격 대비 좋은 시설은 만족스러웠지만, 막상 밤이 되어도 몸의 열기가 가라앉질 않았다. 냉수에 샤워를 세 번이나 했는데도, 더워서 잠을 못 자던 남편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침대에 누워 혼자 짜증을 내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도 더워서 짜증이 났지만, 새벽 두 시에 숙소를 옮길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나보다 열많은 남편이 걱정되어 화장실에 있던 양동이에 냉수를 가득 받아 침대 끝머리에 두었다. "오빠, 좀 일어나봐. 침대 밑으로 좀 내려와서 발이라도 여기 담궈. 그래도 냉수 족욕이라도 좀 하면 시원해질거야." 괜찮다는 오빠를 달래가며 냉수족욕을 해주자, 기분이 풀린 오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혜진아, 정말 고마워. 니가 이렇게까지 해주니까, 나 이제 푹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너도 눈 좀 붙여" 다음날 아침 6시, 겨우 잠들었던 오빠는 눈을 뜨자마자 에어컨이 있는 저렴한 숙소를 기어코 찾아냈다. 30도를 훌쩍 웃도는 온도에 습하기까지 한 바르깔라에서, 우린 밥 먹고 바다에 갈 때 말고는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다. 더워서 잠도 못 잤던 첫날 밤의 기억이 곤욕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재미난 기억이 되었지만.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훨씬 덥고 습했던 날씨 탓에, 남인도 여행을 계속하느니 20만원이면 간다는 몰디브로 갈까 흔들리기까지 했다. 신혼여행지의 꽃이라는 몰디브 섬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지만,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온 여행인만큼 호텔에서 호화롭게 지내는 것보다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현지에서 부대끼고 뒹굴며 여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향한 인도 다음 여행지가 바로 코치(Kochi)였다.

인도 께랄라주 코치에서 가볼만한 아틀라필리 폭포.

코치는 인도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였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중국 등 당시 인도와 거래했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물건들이 거대한 무역선을 통해 유입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포트 코친을 따라 걷다보면 중국에서 들여온 거대한 낚시 그물이 있고, 유대인 마을, 고대 모스크들, 포르투갈식 저택들, 영국 통치시대를 엿볼 수 있는 유적들까지 볼 수 있었다. 한 도시에 이토록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녹아들다니. 그래서일까, 코치에선 유독 다양한 그림과 예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들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을 걸어다니고 있자면, 내가 인도에 있는 건지 다른 나라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뭄바이.

인도에서의 마지막 도시는 뭄바이였다. 인도 최대의 도시, 발리우드 영화의 둥지, 무한도전 극한알바에 나왔던 도비가트를 볼 수 있는 곳! 뭄바이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마어마한 물가였다. 다른 인도에선 1만원이면 깔끔한 숙소에서 묵을 수 있었는데, 뭄바이에선 5만원짜리 숙소도 베드버그(빈대)를 피할 수 없단다. 그래도 인도인데! 유럽보다 비싼 물가에 혀를 내둘렀다. 배낭여행자 예산으로 겨우 얻은 숙소는, 천장은 모두 뚫려있고 목판으로 겨우 간이벽처럼 방들을 만들어둔 곳이었다. 푹 꺼지는 매트리스에 창문엔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다. 한 공간에 수십 개의 간이벽만 쳐져있는 공간에 묵는 거라, 방음은 커녕 밤 10시에 로비 불이 꺼지면 전체 방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베드버그가 나올까 두려워 잠이 쉬이 들지도 않는 우리 모습에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날이 밝자마자 인도의 빨래터, 도비가트로 향했다. 도비가트는 인도의 피라미드 계급사회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불가촉천민들이 아직까지도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하루종일 빨래를 하는 곳이다. 인도의 가장 낮은 곳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자, 현재의 인도를 여과없이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참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 뒤에는 높은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매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인 인도답게, 빠르게 현대화된 인도와 아직도 극심한 빈부격차로 힘들어하는 인도의 모습이 모두 한눈에 담겼다.

40일 간의 인도여행을 마치자, 친구들이 물었다. "인도를 여행했다니! 무섭지 않아? 어땠어?" 인도를 한마디로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 "정말 더럽고 불편한 나라지만, 좋았어" 라고 대답했다. 더러운데 좋다니. 내가 들어도 아이러니하고 바보같은 대답이지만, 이것만큼 인도에 대한 내 느낌을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 쁘라블럼!(No problem, 문제없어)"을 외쳐대는 그들 때문에 웃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그렇게 외치고 있다. 이것쯤이야, 문제없지! /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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