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지 뒤편에서 것대산 봉수대로 이르는 오솔길은 청주지역에서 마지막 남아있는 조선시대 옛길이다. 지금은 보은에서 미원이나 피반령을 거쳐 막바로 청주에 이르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길은 좀 달랐다.
 보은에서 피반령을 숨차게 넘어온 남도 과객은 방서동에 이르러 목을 축인후 선도산 자락을 따라 봉화뚝을 넘어 청주의 수문장격인 상당산성 남문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진천, 서울로 가려면 청주를 거치지 않고 논 스톱으로 상당산성 서문을 거쳐 율봉역(栗峰驛:율량동)으로 길을 잡았고 청주로 가려는 과객은 남문에서 맞은편에 있는 것대산 상봉재~명암지를 지나 청주로 접어들었다.
 현재 이 길은 사람의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역사의 오솔길로 남아 있다. 간혹 삭정이를 줍는 나무꾼이나 등산객이 산허리를 기어 오르는 정도다. 최근에는 청주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시티투어에 옛길 답사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칡넝쿨이 엉켜 있는 이 길은 현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옛 것을 간직한 이방지대(?)로 남아 있다. 자연 암벽에는 상당산성을 지키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송덕비가 사열을 하고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에는 역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병사의 송덕비는 10여기나 되는데 비 바람에 마모되어 글자가 상당수 없어졌다. 내용을 완전히 판독할 수 있는 비문은 1~2기에 불과한데 병사 전문현 불망비(兵使 田文顯 不忘碑)는 풍파속에서도 간신히 목숨을 보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병마절도사의 송덕비, 불망비 등은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으나 자연 암벽에 새겨진 송덕비는 극히 드믈다. 비석의 지붕인 ''비갓''은 돋을 새김(양각)형식으로 만들었고 비문은 음각을 하였다.
 이정골을 내려다 보며 줄지어 있는 이 비문만 보더라도 이 길이 숱한 사연을 간직한 청주의 옛길이었다는 점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이 비문은 80년대 초반에 발견되었으나 공식적으로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향토 사학계에서도 만약 이곳에 길이 난다면 비문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터이다. 다름아닌 비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명암지~것대산에 이르는 이길은 향수를 자극하는 역사의 오솔길 정도에 그치고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엄연한 1번 국도였다. 도로(道路)중의 도(道)는 수레가 한대, 로(路)는 3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이 좁아져서 그런 것이지 애당초는 사람은 물론 수레 2~3대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산허리를 타고 명암지 뒤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한동안 세인에게 잊혀졌던 이 길은 4차선 도로로(3.96km) 확·포장될 모양인데 환경훼손을 우려한 환경부의 제동으로 공사에 착수조차 못하고 있다. 환경적인 측면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역사환경의 훼손을 최소화 했으면 한다. 특히나 병사의 송덕비는 희귀한 양식이니 만큼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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