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는 차 향기로 가득 메워져있다. 사람들은 침묵하며 차 맛에만 몰입한다. 녹색도 아니고 금색도 아닌 오묘한 이 탕색들. 천연으로 엉켜진 색 향 미의 조화로움. 한참을 들여다본다. 찻물이 숨 쉴 때마다 녹색과 황금색이 뒤엉켜 심오한 경지를 뿜어내고 있다. 뽀얀 안개가 찻잔 위에 노닐고 향기는 천리를 품고 정적 속으로 흘러간다. 신선만이 알 수 있는 선(禪)의 세계를 어찌 감히 품할 수 있을까.

교육원에서 차 품평회가 열렸다. 몇 가지의 차를 놓고 사람들은 온몸의 감각을 살려 향과 맛에 집중한다. 말 그대로 차의 가치를 논하는 일이다. 마른찻잎의 외형, 우려 놓은 차의 탕색, 그리고 엽저(우리고 난 차 잎)를 보고 차의 좋고 나쁨을 알아내고 그에 마땅한 품등을 정하는 일이다.

"읽을 수 있는 책과 마실 수 있는 차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라고 하신 법정 스님의 차의 가치를 생각하면 배부른 얘기지 싶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차가 주는 정신적인, 물질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만족하지는 않는다.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서 차의 품질, 등급, 그리고 그에 합당한 가격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상품의 가치를 스스로 품평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차 전문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은근히 과시하기도 한다.

요즘은 외국을 다녀오면서 차를 구입해오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남자 한 분이 직사각형의 흑차를 가지고 왔다. 중국 여행을 갔는데 좋은 차라고 해서 값비싸게 구입했다고 한다. 차 표면에 한자로 된 글자가 찍혀있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차 가운데는 거의 쓰지 못할 찻잎으로 긴압해서 만들어 놓은 차였다. 나의 대답이 궁금했던 그에게 "이차는 드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요. 다음에 여행 가실 때는 이런 차는 사지 마세요"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좋은 차를 제 가격에 산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후 발효된 흑차(보이차)의 종류는 오래된 전문가들이 아니면 품질이나 등급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강제로 숙성시켜 만든 차는 선택하기도 어렵지만 값도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고급차만 좋은 차로 알고 있지 싶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값비싼 우전이 중작이나 대작보다 약리성분이 월등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선함과 감칠맛은 우전이 더 풍부하다. 그렇지만 건강에 이로운 폴리페놀 성분은 늦게 따서 만든 중작이나 대작에 더 많이 들어있다.

남북극 시대의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는 차를 참 좋아했다. 선사는 "내가 차를 마시는 이유는 말라있는 나의 배를 적셔주고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당시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차 생활을 나무라며 겸허함이 베인 차의 가치를 말하고 있지 싶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명품을 소장하며 외부적인 면에 삶의 가치를 두는 사람, 자기의 분수에 맞게 적절한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 아님 물건의 높낮이를 떠나서 착한 가격에 가치를 두는 사람.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맑고 향기로운 차는 자유로움을 가져다주는 내적 행복의 지름길이다. 차마다 품어져 나오는 향기와 맛은 인간의 오감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차의 신묘함은 인간의 감각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 싶다. 그것이 차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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