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컨텐츠진흥팀장

목욕탕 관련 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예술의 섬 일본 나오시마.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사람은 들뜬 호기심과 달달한 추억에 설렘 가득할 것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섬을 주민과 예술인과 사업가가 힘을 모아 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킨 곳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 일본 최고의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등 거장들이 꾸민 건축과 공공미술과 생태의 숲이 푸른 바다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섬 전체가 거대한 예술의 섬이 된 것이다. 미술관이 있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예술로 포장된 호텔이 있다. 곳곳에 매력적인 설치작품과 소나무 숲과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이 나그네를 시심에 젖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힐링토록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지만 3년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미술행사인 트리엔날레 기간 중에는 숙소 예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다.

이 중에서 내 시선을 강탈한 곳은 폐가였던 마을을 문화재생을 통해 예쁘게 가꾼 사례다. 우물, 빨래터, 정원, 창고 등 사람의 눈길이 가는 곳이 모두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며 삶의 향기가 될 수 있도록 꾸몄다. 비록 낡고 오래됐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기념하며 자원이 되도록 한 것이다. 마을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삼삼함. 마을의 풍경을 담고 다양한 문화상품을 하나씩 고르는 넉넉함. 마을 주민들의 친절한 안내와 골목길에서 풍겨오는 바람의 화원…. 그래서 여행은 나그네에게 삶의 여백을 주고 삶의 가치를 주며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항구가 있는 작은 마을에 목욕탕이 있는데 이 조차도 예술이다. 마을이 버려지면서 손님조차 끊기자 폐업을 선언했다. 선택의 길은 철거나 방치 둘 중 하나. 그런데 예술의 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낡은 목욕탕도 예술의 공간이 되었다. 건물 외벽은 설치미술로, 목욕탕 내부도 다양한 미술작품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한다. 예술로 몸을 씻고 예술로 마음을 씻는 성스러운 곳이다.

서울에도 버려진 목욕탕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곳이 있다. 아현동의 '행화탕'이란 곳인데 대형 찜질방 등에 밀려 문을 닫앗다. 최근에 예술인들이 공간의 가치를 그대로 활용해 공공미술로, 공연장으로,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에 삶의 흔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목욕탕에서는 누구 하나 예외없이 평등하다. 고단한 일상, 묵을 때를 벗기로 새로운 삶을 충전했던 곳이다. 그래서 더욱 정감 있고 그리움이 짙은 곳이다.

청주에도 동네목욕탕이 하나 둘 자치를 감추고 있다. 폐업 위기에 직면한 곳도 있다. 시내에 학천탕이라는 곳은 30여년간 청주를 대표하는 목욕탕이다. 한국의 건축계 거장 김수근씨가 설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년의 청주시민들은 이곳에서 고단하고 눅눅한 일상을 씻어내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고자 했다. 애달픈 추억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지만 지금은 철거냐 방치냐 매각이냐 보존이냐 설만 무성하다. 어디 학천탕 뿐이던가. 동네 목욕탕이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컨텐츠진흥팀장

삶의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치자면 동네 이발소와 방앗간도 이에 못지않다. 청주지역에는 골목길마다 오래된 이발소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분위기로 치자면 세련된 공간의 미용실만 하겠냐만 동네 사랑방으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방앗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기름 짜고 곡식을 볶으며 명절 때마다 떡을 찌고 빚던 곳이 아니던가. 정미소도 마찬가지고 대장간도 애달픈 추억만 남긴 채 사라지고 있다.

설령 남아있다 해도 오가는 발길이 뜸할 것이고 거미줄 가득할 것이며 석양이 지면 적막감이 감돌 것이다. 하여 이러한 곳은 문화재생의 손길이 필요하다. 시민의 힘으로 삶의 흔적을 기념하고 예술의 온기로 특화시키자는 것이다. 문화적 도시재생으로, 일자리 창출의 방안으로, 낙후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략으로도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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