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핵심 바이오의약, 오송에서 길을 찾다]
5. 빛의 혁명, 포항가속기연구소를 가다
질병원인 단백질 분자구조 분석 항체정보 파악
미국서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타미플루' 개발
국내서 첫 PLS 가동…2016년 4세대까지 설치
대학기관·중소·산업체 등 협업해 신약개발 지원

포항가속기연구소 김연길 빔라인부 생명화학소재 팀장이 가속기 내부의 빔라인(실험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장링을 통과한 전자의 방사광은 단색화장치를 통해 단백질의 분자를 규명하게 된다.

[중부매일 이규영·신동빈 기자] 지난 2009년 전세계는 신종 인플루엔자(H1N1)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았다. 멕시코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대유행' 선언 이후 1만8천5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국내에서도 75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6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 타미플루가 치료제로 등장했다. 미국은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사용해 중국 토착식물인 '스타아니스(팔각회향)'를 연구, 식물에 포함된 시킴산(shikimic acid) 원료를 분석한 후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타미플루는 인플루엔자 감염환자들의 사망률을 줄이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2004년 WHO는 타미플루를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일한 치료제로 인정했다.

빛의 파장으로 물질을 분석하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 내부의 전자총을 통해 발사된 전자들은 전자석에 의해 가속돼 원형궤도의 저장링에 들어가게 된다.

1994년 12월 국내 첨단과학의 빛이 포항에서 가속됐다. 세계에서 5번째이자 국내 유일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이하 PLS-Ⅱ)가 가동됐기 때문이다.

방사광으로 물질을 분석하는 PLS-Ⅱ는 자외선, 가시광선 등 백색광의 다양한 파장을 이용해 물질의 분자구조를 파헤친다. PLS-Ⅱ는 원형궤도의 거대한 저장링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저장링 속에서 소립자인 전자가 3GeV 속도, 즉 건전지 수십억개 수준의 전압으로 움직이게 된다. 가속된 전자는 엄청난 밝기의 백색광을 분출한다. 분출된 백색광은 저장링 바깥에 설치된 34개의 빔라인(경로)을 통해 단색화 장치로 이동하게 된다. 각각의 빔라인에 연결된 실험장치는 빛의 파장을 선택해 빛의 산란, 회절, 흡수 등 물질과의 상호관계를 분석하게 된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 내부의 빔라인(실험장치). 모두 34개로 구성돼있으며 생명과학분야, 재료과학분야, 나노기술분야, 화학분야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어 2016년 8월에는 '슈퍼 현미경'이라 불리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설치됐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 보유국이 됐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물질의 고정된 상태만 볼 수 있었던 3세대 방사광가속기와 달리 분자의 움직임에 시간을 부여, 머리카락 두께의 수십만분의 1 크기인 나노세계와 1천조분의 1초에 해당하는 펨토세계의 분자를 관찰할 수 있다.

보다 미세한 차원의 단백질 연구

연구원이 방사광을 통해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 김연길 빔라인부 생명화학소재팀장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면 보다 낮은 차원, 미세한 차원인 분자 수준에서 단백질을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34개의 빔라인(실험시설) 중 3곳은 단백질을 연구하는 곳"이라며 "유전자의 99%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어 각기 다른 유전자만큼 규명되는 단백질 구조도 엄청나게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전 세계에서는 1만여 개의 단백질 분자구조가 규명됐으며 지난 2015년도에 규명된 단백질이 9천여 개에 이른 것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포항 방사광가속기 투시도

김 팀장은 또 "사람 유전자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곰팡이 등에서도 단백질을 발견할 수 있다"며 "세상 모든 물질의 구조를 볼 수 있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분자를 분석, 신약 개발에도 높은 효율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질의 시간 흐름을 볼 수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단백질의 작용을 유추해 연구 능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신약 생산기술에 힘을

원형궤도의 저장링을 둘러싸고 빔라인(실험장치)들이 즐비해있다.

단백질의 분자구조를 안다는 것은 신약개발에 근원적으로 필요한 항체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 세포레벨에서의 분자구조를 이용하는 바이오 신약은 항체 성격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김연길 팀장은 "합성신약, 바이오신약 모두 단백질과 연관성이 있다"며 "짧게는 하루정도 걸리는 방사광가속기 연구로 항생제의 특이성을 높이고 시간도 절약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오시밀러 출시 전 항체 유사성 검사를 할 때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안전성, 유사성 등을 고려했을 때 분자수준에서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2천여 명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물질 분자구조 연구를 위해 포항 가속기연구소를 찾는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네이처 및 셀 표지 논문을 포함, 3천 여편이 넘는 논문이 국내외 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김 팀장은 "충북대 등 다양한 대학의 연구교수들도 샘플을 하나씩 들고 연구소로 찾아온다"며 "대학기관 이외에도 기술력이 필요한 중소기업에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포항 방사광가속기 연구소는 전국의 산업체와 협업해 지역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기술지원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기획취재팀 (팀장 이규영, 신동빈)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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