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컨텐츠진흥팀장

/ 클립아트코리아

며칠 째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다. 간호사들은 혈당과 혈압을 수시로 체크하고 인슐린주사까지 꽂았다. 그들의 표정과 움직임은 내가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처럼 긴장돼 있었다. 입원할 때의 당 수치가 508이었다. 이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언제나 건강하고 문제없을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러한 자만이 화를 불렀다.내 생애 처음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나니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족과 이웃과 햇살의 소중함을 느낀다. 환자복을 입고 병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잔디밭을 거닐 때는 발밑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수런거렸다. 아침에 뜨는 태양도,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그 삶의 진귀함은 수액을 타고 내 핏줄로 몸으로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아침햇살도 그렇게 내게 다가오고, 붉게 물든 나무에 숨어 있던 바람도 내게 달려와 어깃장을 놓고 달아난다. 노래하는 새들도 살랑거리는 바람도 새롭고 심술궂다. 5인 병상에 두 명이 퇴원했는데 그 빈 자리가 헛헛하게 느껴진다. 있을 때는 그저 나랑 별반 차이 없는 환자였고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는데 그 자리가 왜 이렇게 큰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영혼까지 스며드는 치명적인 냉기를 느낀다.

처음에는 절망했다. 내 삶이 정지되고 생각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아니 이 병상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족들이 달려오고 지인들이 하나 둘 내 곁에서 두리번거릴 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 많은 일 부질없으니 내려놓고 자신을 챙기라며 따끔한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몸 관리를 왜 엉망으로 했느냐며 핀잔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여 나는 나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동안 내 청춘만 방기하며 귀한 시간 속절없이 흘려보낸 것은 아닌지 부끄러움에 젖었다. 병상에서의 깨달음은 건강의 소중함이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북풍한설의 칼날 같아서 어깨만 스쳐도 눈물이 난다. 그 외로움을 딛기 위해, 더 큰 아픔을 견디기 위해 바람부는 날 집을 짓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집, 사랑이라는 집, 이웃이라는 집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지만 자연과 사랑에 대한 집요함은 남달랐다. 그는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담으며 자연속의 신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며, 살아서도 않된다"며 홀로의 고독과 외로움에 진저리쳤다. 역경을 딛고 불멸의 명작을 만들었으니 아픔이 성장통이 되었고, 외로움은 향기를 만들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컨텐츠진흥팀장

이제 알았다. 고통은 진정한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견딤이 쓰임을 만들다는 것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망설여질 때 길을 나서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가던 길 마저 가는 것이다. 성경에도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길 위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녹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냉가슴 만져야 헛헛한 슬픔만 감돌뿐이다.

칼 융은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나로 인해 상처받았으니 나로부터 치유가 시작되어야 한다. 치유의 시작은 사랑이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삶을 유린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새로운 삶을 허락한다. 내 삶에는 온통 상처투성이라며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엄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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