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대한민국 사실주의 미술의 대부' 구자승 화백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대한민국 사실주의 미술의 거장인 구자승(76) 화백이 오는 2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 1·2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다.

'힘의 응집 리얼리즘'을 주제로 N갤러리(대표 임경희·02-580-1300)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사실주의 회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충주시 앙성면 비내골에서 둥지를 튼 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구 화백은 이번 개인전에서 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150여 점을 전시한다.

청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이번 개인전은 사실상 그의 회고전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이번 개인전에 대한민국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다. / 편집자

구자승 화백

개인전을 앞둔 구자승 화백은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레임으로 상기돼 있었다.

"캔버스 앞에 앉아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림에 빠져 들수록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구자승 화백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직업이 아니고 즐김의 대상이다.

그런 면에서 평생 일을 즐기면서 살아온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구 화백은 지금까지 20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무려 550여 회의 초대전에 참여했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매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보냈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만은 이삼십대 젊은 작가들 못지않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캐나다 온타리오 미대를 졸업한 구 화백은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뒤 10여 년 전부터 충주시 앙성면에 내려와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고즈넉히 흐르는 남한강과 길게 이어진 비내섬 갈대밭이 내려다보이는 그의 저택은 아내 장지원(71) 화백과 함께 우아한 은빛인생을 보내는 보금자리다.

그림을 인연으로 만난 부부는 제 2의 고향인 이곳에서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걸으며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구 화백의 미술에 대한 재능은 타고난 것이었다.

정 3품 벼슬을 지낸 그의 증조부는 난을 잘 쳤던 것으로 알려졌고 동아일보 기자였던 부친도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러나 7남매 중 장남인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부모님 몰래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넣고 합격해 입학했지만 집안의 지원이 끊겨 물감을 살 돈조차 없었다.

어렵게 대학생활을 이어갔고 군대 다녀온 뒤로는 학교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그때 여학생이었던 아내 장지원 화백을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는 상명대 강사 등으로 일하다가 마흔한살 늦은 나이에 뜻을 세워 아내와 함께 캐나다 온타리오 미대로 유학을 떠났다.

구 화백은 현대 화단에서 꿋꿋하게 사실주의를 고집하며 한길을 걸어온 흔치 않은 화가다.

현대미술에서 사실주의가 다소 구태의연하게 평가되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1980년대 추상미술 붐이 한창일 때도 그는 일본과 미국, 캐나다 등 국제 화단을 누비며 구상주의 화풍을 우직하게 고수했다.

이같은 고집이 결국 대한민국 사실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우뚝 선 그를 만들었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과 신미술회장, 한국 인물작가회장 등을 맡으며 끊임없이 한국 구상미술의 새길을 모색해 왔다.

2010년 말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미술부문 '올해의 최고예술가상'을 받았다.

'정물화의 대가', '인물화의 천재'로 불리는 구 화백은 특히 정물화를 많이 그린다.

그는 주전자와 술병, 꽃병, 보자기, 도자기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소재로 택한다.

하지만 적절한 공간과 여백, 사물의 배치 등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구성을 통해 아주 품위있고 신비스런 느낌의 작품을 창조해 낸다.

무심한 것 같지만 철저하게 계획된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각각의 물체들이 반사되고 가려지면서 만들어 내는 조형미가 바로 작가의 의도다.

그는 정물화의 소재를 찾기 위해 골동품가게와 잡화상 등을 자주 찾아 나선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형태나 질감, 색채를 고려,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극적인 연출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붓을 통해 배치된 사물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그의 작업이다.

특히 철저한 프로정신에서 배어나온 절제된 감정표현으로 과하지 않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의 그림은 대상과 소재를 눈에 보이는 대로 충실히 묘사하는 사실주의 회화지만 이전의 사실주의와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과거의 회화적 관습에 순응하기 보다는 공간을 적절히 활용한 독창적인 화면구성과 자신만의 미적 감수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과거 사실주의 회화에서 보여줬던 어둡고 중후했던 느낌에서 벗어나 밝고 산뜻한 색채이미지를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또 19세기 이전의 회화에서 보였던 과장된 명암기법 보다는 눈에 보이는 일상적인 시각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가 자주 그리는 정물화의 소재 역시 우리 시대에 만들어진 흔한 공산품을 택해 보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친숙함을 준다.

그는 이처럼 그의 작품을 현대인의 감수성과 일치시키기 위해 치열하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현대미학이 풍미하는 상황에서도 구자승 화백은 여전히 사실주의 회화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그것은 아마도 현대적인 미적감각을 반영한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대한 응분의 대가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구자승 화백에게는 당연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간절한 소망이 있다.

앞으로 10년 후, 다시 한 번 개인전을 갖는 일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겸손한 그는 이번 개인전에 회고전이라는 이름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비로소 '구자승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30호에서 300호까지의 대작 여러 점을 준비했다.

1년 반 정도 전부터는 매일 8∼10시간씩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만 매달렸다.

가히 젊은이보다 더 젊은 열정을 가진 작가다.

그래서 그에게 '70대 청년'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10년 뒤의 회고전에 더욱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구자승 화백은 "잠시 한 역에서 내려 다시 들고 가야할 짐과 이젠 내려놓아야 할 짐들을 풀어 정리하는 심정으로 이번 개인전을 마련했다"며 "이 작품 하나하나가 어딘가에서 빛을 발할 먼훗날 언제쯤, 나는 저무는 종착역에 서서 또 하나의 나의 별자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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