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15.내 사랑 말차

아침 햇살 비친 밥상 위에 진한 차 향기가 내려앉는다. 현미 떡 한 개, 계란 두 개, 감자와 고구마, 홍시 한 개, 그리고 향긋한 말차 한 잔. 쌀쌀한 날씨 탓인가. 오늘따라 머리를 마주하고 앉아있는 식탁이 더 애틋하다. 지인에게 밥상의 사진을 보냈더니 수녀님의 아침식사와 같다고 거룩한 밥상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소박하고 담백한 아침 밥상인 것 같다.

매일 새벽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는 남편을 보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떠올렸다. 교육원이든 매장이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 마시기를 약 팔 듯이 권했다. 그런데 정작 가족은 챙기지 못했다. 이마와 등허리에서 찌든 땀방울이 시냇물같이 흘러내리는 노력에도 몸의 변화는 쉽지 않다.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두툼해져 가는 몸. 맑은 찻물로 구석구석 찌들어있는 몸속의 노폐물을 씻어주고 싶다.

제나라의 안자춘추(晏子春秋)는 거친 밥에 구운 고기 세 꼬치, 새알 다섯 개, 그리고 차나물을 즐겨 먹었다. 밥상에 청초하게 올라앉은 차나물을 연상하니 소박한 느낌이다. 가끔 햇차를 우리고 난후 어린 찻잎을 나물로 무쳐먹는데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량반체' 라고 하는 차나물을 지금도 즐겨먹는단다. 나라의 재상으로 호의 호식 할 수 있었던 그의 검소함이 보이는 듯하다.

'음식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우리의 식문화를 떠올려본다. 다양성과 편리성에 따른 인스턴트식품과 화학조미료, 가공식품 등에 물들면서 '과유불급'에 의한 현대병이 생기기도 한다. 수수하고 정갈한 우리의 옛 밥상이 그립다.

외식 후, 가끔 지나친 화학조미료에 민감하게 몸이 반응할 때가 있다. 입안이 텁텁하고 심한 갈증이 온다. 물을 먹어도 개운하지 않다. 차를 우려서 여러 잔을 마셔야만 입안도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래도록 차를 마셔온 직업병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해독작용을 하는 차의 성분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자연에서 빚어진 천연을 좋아한다는 반응이 아닌가.

이런 나의 경험을 함께 느끼고 싶어 늘 안달한다. 남편도 함께 하면 좋으련만 그는 차 한 잔 마시고 배부르다고 돌아선다. 한 잔으로 온몸이 뚫려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방법은? 급기야 "소 담 검 말" 이라는 나만의 메뉴를 아침 식탁에 내놓았다. 남편의 눈이 커졌다. "아침부터 웬 말차야?"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차의 백미라고 하는 말차. 찻잎을 가루 내어 다 마시니까 영양만점이다. 곱게 간 차 가루에 따뜻한 물을 붓고 대나무 차선으로 젖는다. 물에 희석된 차가루가 휘저을 때마다 수많은 방울들로 변해 소복이 쌓인다. 꽃 같은 거품이 일어야 맛도 좋고 부드러워지는데 거품이 일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의 피로를 풀고 건강을 지킬 수만 있다면 미숫가루 타먹듯이 흔들어 마시면 어떠랴.

그는 막걸리 마시듯이 말차를 마신다. 간혹 남길 때, "약이야, 다 마셔야 돼요"강제적으로 시작했던 아침밥상이 초겨울 날씨처럼 단단히 여물어간다. 이제는 말차를 마신 뒤 잔여물까지 물을 부어 마신다. 그도 알 것이다. 말차를 마시는 깊은 의미를. 소박함, 담백함, 검소함이 담긴 아침 식탁에 녹색의 종소리가 울린다. 말차의 진한 방울들이 혼탁한 그의 혈관 속의 먼지를 '톡톡' 털어낼 것 같다. /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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