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일요일 밤. 함께 있기를 원하는 가족들을 떼어 놓고 집을 나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언제부터 계셨는지 모르겠으나 법인소속 변호사님 두 분이 각자의 방에 불을 환히 켜두고 일에 열중이다. 아마도 그 다음 주에 있을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왠지 법인의 대표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연초에 법원의 재판 휴정기가 있어 사건을 무작정 미룰 수 없기에 많은 사건이 휴정기 전에 재판날짜를 잡다보니 그에 따른 상담도 몰리고 그에 따라 재판준비도 바빠진다. 또한 연말이 지나 연초는 법원 인사철이기에 다른 법원으로 떠나게 되는 판사들이 사건을 부랴부랴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도 변호사의 연말 혹사를 가중케 하는 요소가 된다.

변호사들의 연말 격무는 이런 재판업무 뿐만이 아니다. 평소 사람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변호사의 업무특성상 연말은 업무외적인 일로도 무척이나 분주하다. 12월이 되면 연일 계속되는 송년 모임 때문에 평소 서면을 쓰거나 법정에서 주장할 법리를 고민해야할 평일 밤시간을 송년회에 할애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요일 밤에 사무실 불을 환하게 밝힐 수밖에 없다. 일도 일이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연말이 되면 자주(사실은 거의 매일) 평소 만나고 싶었던 분들과의 서로 다른 모임이 두세 건이 겹치기도 한다.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저녁식사를 몇 번씩하기도 하는 것은 웃픈 일로 넘길 수 있는 일이겠으나, 모임 수만큼 필자의 진심이 나누어져 크기가 작아진 것으로 여겨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모임의 단체 공지에 "선약이 있어서 못가겠다"고 단순 명료하게 자신의 불참을 쿨하게 통보하는 멤버의 과감함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 과감함이 없는 필자는 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겹쳐진 송년회 일정에 대해서 내의지가 아니라느니 다른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느니 설명하는 것이 변명을 늘어놓는 것으로 생각되어서 모임에 모두 가서 몸으로 직접 설명을 하고 오는 편이다.

그래서 끝까지 자리를 못하고 먼저 떠나는 것이 아쉽다는 또다른 표현으로 지인들이 권유하는 술을 몽땅 받아 마시고 잔뜩 취한 상태로 다른 모임으로 뒤늦게 이동하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면 술에 몸이 반쯤 적셔진 필자를 만나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인지 술에 약한 편인 필자가 대외적으로는 말술에 술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꽤나 많다. 하지만 연말에 필자가 연말 송년모임이 많아지는 상황을 견디기 쉽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단지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연일 마셔야 하는 체력적 부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 해를 추억하는 자리를 함께하며 오붓하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픈 분들은 많으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필자의 진심을 전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 때문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간혹 감사한 마음을 최대한 전하려는 무리한 노력이 연일 계속되다가 몸이 한계에 도달하여 어쩔 수 없이 병원신세를 지며 모임장소에 참석하는 것 대신 링거를 맞고 있는 사진을 전송하는 것으로 송년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필자의 고단함은 스스로의 미련함이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는 하다. 어떤 이는 필자가 법인 운영을 위해서 마케팅에 열을 올리려는 의도로 많은 모임에 얼굴을 내민다고 생각하는 하실 수도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나 그 지인들의 법적인 분쟁에 대해서 뜻하지 않은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그런 즐거운 모임에서 유료상담을 할리 만무하고, 실재 수임한 경우도 거의 없다.

언젠가 필자는 한 친구로부터 "넌 변호사를 하기에 너무 인간적이다"라고 걱정 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것이 필자가 사람 내음 물씬 나는 멋진 사람이라는 칭찬을 우회적으로 한 것으로 여겨 우쭐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친구는 필자를 잘 알고 진짜 걱정을 해준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필자는 곁의 사람들이 좋은 것을. 오늘도 필자는 필자를 기다리는 모임에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