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배경환 변호사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연말이 되다보니 이런 저런 모임에서 송년회를 한다. 하루에도 몇 건이 겹치기도 하여 이곳저곳 코를 들여 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만취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이 되면 숙취로 고생하면서 하루 일정을 살핀다. 오늘도 두 모임에서 송년회를 한단다. 모임 총무는 어떻게든 참석율을 높이려고 메시지며 전화를 한다. 피할 수 도 없다. 송년회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술 권하는 사회이다 보니 술로 인하여 생기는 많은 폐단들이 있다. 물론 음주의 긍정적 효과도 무시는 못한다. 사람의 만남을 부드럽게 하고 부부간의 정을 돈돈히 하기도 한다. 오늘은 이런 긍정의 효과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음주로 인한 범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최근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출소를 막자는 여론이 일었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주취감경의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조두순은 사건 당시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인되었고, 법원도 이런 조두순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치감경을 인정하여 징역 12년형을 선고하였다. 조두순 사건뿐 아니라 많은 재판과정에서 주취감경을 주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술로 인하여 발생하는 범죄에 대하여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주취감경을 주장하였고, 법원도 상당히 관대하게 받아 들였다. 심지어는 음주운전을 처벌하면서도 운전을 어떻게 하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술에 만취된 사람에게는 주취감경을 주장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도 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필자가 재판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많은 범죄들이 술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기, 횡령, 배임등 일부 재산범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술과 연관이 있다. 피고인들 중에는 실제로 자기가 범한 행위자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조서를 읽어보면 이렇다. "제 주량은 소주 한 병 반 정도인데, 어제 술자리에서 소주 두 병 정도까지 마신 건 기억에 있는데 그 후에 얼마를 더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녔던 기억은 조금 있는데 누구와 어디를 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피해자와 다툼이 되었는지 제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누군가 제 길을 막아서서 제가 뭐라고 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 것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제가 피해자를 폭행했다면 그 분 말이 맞을 겁니다"와 같은 형식이다.

수사관은 실제로 피고인이 술에 만취했는지를 주변 참고인이나 피해자등을 통하여 진술을 듣고 이를 기록에 그대로 남긴다. 재판이 이루어지면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이같은 사정을 적극 변론하여 피고인이 고의로 폭행을 한 것은 아니고 술에 만취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재판을 이끌어 간다. 재판부도 당연히 피고인의 상태를 여러 가지로 견주어 보고 실제로 만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선처를 한다. 선처를 한다는 것은 형을 정함에 있어 술로 인하여 심신이 미약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감경하여 선고한다는 것이다.

최근 주취감경이 여론화 된 것은 조두순의 출소를 막자는 취지에서 생겼다. 이런 여론으로 인하여 최근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안철상후보자에 대해서도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있었고, 안 후보자는 주취감경의 폐지에 대하여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조두순 사건으로 인하여 성범죄에 대하여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를 주장할 수 없도록 하였고, 법정형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이 되었다.

배경환 변호사

또한 대법원 양형기준표에도 만취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관하여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범행의 고의를 가지거나 범행 수행을 예견하면서 자의로 만취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그 사실이 형의 가중인자가 되고, 평소 만취상태에 빠지면 타인에게 해악을 가할 소질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실을 양형인자로 고려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미국과 영국도 주취로 인한 경우를 특별한 양형인자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취로 인한 심신미약에 대해서는 그것이 범행과 관련하여 불리하게도 유리하게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아예 법으로 금지하기 보단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일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스스로 범행을 예견하고 만취상태에 빠진 경우가 아닌 한 범행 당시의 심신미약 상태를 그 원인에 따라 달리 취급해야 할 아무런 법리상의 근거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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