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어느 날인가 사우나에서 전신거울에 비춰진 필자의 모습을 보았다. 필자의 몸은 갑바상실, 복근실종, 턱선불명 세 단어로 설명될 수 있었다. 턱선불명이야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을 해 왔기에 그나마 덜 놀랐지만, 가슴근육과 복근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분명 얼마 전까지 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 갔을까. 물론 필자의 그것이 TV에 나오는 근육맨처럼 가슴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만큼은 아니었고, 몸짱에게서 볼 수 있는 음영이 뚜렷한 王자는 아니었어도 흐릿한 三 자는 분명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모습에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십년이 넘게 거의 동일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체형은 변한 듯하다. 근수는 보존되었으나, 그 육질은 변형된 것이다. 단단했던 근육은 부드러운 살코기가 되어 팔다리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다소 얇아졌고, 가슴근육도 세월을 빗겨가지 못하고 물렁해져서 중력을 따라 아래로 이동하여 배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아재 몸이 된 것이다. 물론 아재로의 안정적인 체형 변경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과거 비교적 단단했던 필자의 팔감촉 때문에 팔베개를 거절하던 가족들이 요즈음에는 필자의 팔을 취침용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침같은 느낌의 단단한 팔에서 라텍스같이 폭신폭신해진 느낌의 팔이 취침용으로 더욱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에 잠시 기분 좋아졌다. 필자의 쓰임새가 보다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비단 몸만 아재로 변했으랴. 정신도 몸을 따른다. 믿거나 말거나 나름 재치있어 이성과 대화를 할 것 같으면 화려한 팔색조 매력을 뿜뿜거렸던 필자의 신박한 개그감(?)과 나름 화려했던 언어유희(?)는 이제 감각을 상실한 아재개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은 간간히 사무실 식구들에게만 헛웃음을 선사해 살짝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필자의 빠른 정신적 아재화는 신체적 노화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필자의 가족에게 오랜만에 구사했던 개그가 야유로 돌아오곤 하는 경험을 통해, 필자의 개그는 올드패션한 아재개그가 되었다는 것을 필자도 안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벌써 수년 째 집과 사무실 밖에서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리한 개그를 구사하지 않으니, 자연 필자는 외부에서 사뭇 진지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끔 자포자기 심정으로 던지는 개그에 뜻하지 않는 열띤 호응을 보여주는 사무실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사실 직업적으로 가벼운 농담을 툭툭 던지거나 요즘 젊은층이 사용하는 급식체를 사용하는 변호사가 의뢰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변호사에게 의뢰인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만큼 절륜한 개그스킬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도 아니어서 굳이 필자의 태생적 유쾌함(이라고 쓰고 촐랑거림이라고 읽는다)을 담은 개그드립을 치는 일은 앞으로 별로 없을 듯하다. 나만의 개그소신(?)을 지키기 위해 의뢰인의 신뢰을 잃는 것을 감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변호사는 말쑥한 양복이 아닌 청바지에 캐주얼한 T셔츠를 입고 의뢰인과 상담했다가 그를 소개해준 지인으로부터 신뢰감이 떨어져 보였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그만큼 격식이 중시되는 직업적 특성 하에서 단지 아재로 보여지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필자가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진지한 설명을 듣고, "오지네요. 지리네요.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부분. 담당 재판부 상타쳐. 승소각 인정?"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개의 해에 이르러 평소 바르고 고운 말을 쓰며 명랑한 법조문화 정착에 힘쓰는 착한 변호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공식적으로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재개그 드립을 쳐볼까 하는데 양식있는 독자 제위께서 너그러이 이해 해주셨으면 좋겠다. "독자님들 18年 개年이 밝았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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