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색 붉고 단맛, 여러잔 부담 없어... 기운돌고 몸 가벼워진 선경의 순간
탕색 붉고 단맛, 여러잔 부담 없어... 기운돌고 몸 가벼워진 선경의 순간
  • 중부매일
  • 승인 2018.01.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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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의 차 이야기] 19.선경(仙境)의 보이차

그의 보이차 사랑은 대단했다. 100kg가 넘던 몸무게가 몇 개월 사이 94kg으로 줄고 당은 뚝 떨어졌다고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거기다 변비로 인해 항상 묵직하던 몸이 보이차를 마시고 난후 "변기가 깨질 정도의 쾌변을 보았어요"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는 보이차 애호가였다.

지인의 소개로 매장에 찾아온 G 씨의 경험이었다. 도교육청에 근무하는 G씨는 보이차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절묘한 케이스였다. 그동안 내가 본 경험으로 그렇게 빠른 시일에 확실한 효과를 본다는 것이 흔치는 않은 일이었다. 마치 몸 상태에 맞춰 약이라도 지어먹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경험으로 인한 입소문 탓도 있겠지만 근래에 갑작스레 보이차를 찾는 손님이 많아졌다. 다이어트 차라고 광고하는 홈쇼핑의 역할도 있지만 제주도에서 연예인 이효리가 보이차를 마신 이유가 홍보의 큰 역할이 된 것 같다.

오래전, 꽤나 유명한 절의 스님께서 주시는 차를 마신 경험이 있다. 아주 귀한 차라하시며 값은 상당가 라고 하셨다. 한때 보이차를 두고 진품인지 가품인지를 가려 암암리에 거래되었을 차가 아닌가 짐작했다. 그 한편을 보관할 수 있는 부(富)의 정도가 차 마니아를 가려내기도 했다. 차에 관련된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보이차에 대해서는 스스로 미진하다. 왜냐하면 선인들이 개량하여 심고 가꾸어 마셔온 보이차와 현재 우리가 마시는 보이차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이차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단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생겨난 보이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명나라의 '진략'에 "사대부나 서민이 마시는 것은 모두 보차(普茶)로 둥글게 빚은 것이다"라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온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현대적 의미의 보이차 원형이 존재했다는데 아쉽게도 난 그 원형의 보이차를 본적도 마셔본 적도 없다. 그러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논할 이유가 없다.

가끔 노차를 찾는 사람들이 청나라 말기에 등장한 1949년 이전의 호급차 (동경호, 복원창호, 차순호 등)나, 1950년~1972년에 만들어진 인급차(홍인, 녹인, 황인)를 논하기도 한다. 보이차의 매력은 빈티지를 자랑하는 후 발효차이다. 다른 차에는 없는 미생물이 찻잎의 발효를 도와 오랜 시간 숙성되면서 맛이 깊어진다. 이런 노차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조향(棗香), 난향(蘭香), 삼향(蔘香)은 색향미도 진하지만 마시는 순간 기운이 돌고 몸이 가벼워져 마치 선경의 세계에 머무는 듯하다. 선인들은 이런 차를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는데. 이렇게 귀한 차는 있다고 해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 아닌가.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할아버지가 만들어서 손자 물려주는 보이차. 새내기를 우린 탕색은 옅은 녹색의 맑은 빛을 간직한 생차가 흑차류의 대표인 보이차의 원형이다. 차의 가치보다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요즘의 보이차는 어떤가. 빨리 마실 수 있도록 악퇴(岳堆)시켜 기존에 없던 숙차(熟茶)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탕색이 붉고 단맛이 나며 꽤 여러 잔 마셔도 부담이 없다. 가끔 지푸라기나 흙냄새를 느낄 때가 있어 신중을 기해서 마셔야 할 것이다. 차가 건강에 좋아도 약은 아니다. 오묘한 차의 약리작용을 이용해 건강을 지키고 차 마시는 우아한 정취를 즐긴다면 그것이 선경(仙境)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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