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BC 5세기 고대 그리스 아폴로니아. 통속의 거지철인이라 불리는 디오게네스가 개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과객이 그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개와 함께 사시오?" "개는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자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물지 않아서요. 특히 아는 척하며 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요" 이 대화로 디오게네스는 견유(犬儒) 학파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그의 집은 지붕과 벽은 물론 살림살이마저 없는 통나무 속이었다. 고작 그의 소유물은 표주박뿐이었다. 어느 날 표주박마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애지중지 가지고 다니던 표주박은 어찌했소?" "개가 물웅덩이에서 입으로 물을 마셔 나도 그렇게 해봤더니 표주박 없이 개처럼 물을 마실 수 있어 표주박을 버렸소."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를 찾아왔다. "디오게네스, 필요한 게 없느냐." 명색이 세계를 지배한 대왕의 물음에 참으로 생뚱맞은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대왕님께서 해를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 주시오. 아직 더 따스한 햇볕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필요한 게 없는데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내가 세계를 지배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니까?" 하지만 이내 소리를 죽여 대왕은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밤낮으로 등불을 들고 다녔다. 밤의 등불은 그래도 괜찮았다.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이 문제였다. 보다 못한 한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어찌해서 벌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시오?" "나는 사람을 찾고 있소. 아주 정직한 사람 말이오." 디오게네스와 대화를 나눈 나그네는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아니,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아무리 거지 철인이라도 대낮에는 등불이 필요 없음을 알 터인데 말이다. 여하튼 그가 등불을 밝혀 찾는 '아주 정직한 사람'은 그리스와 그리스인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지식인 또는 지혜로운 자다. 끝내 그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갑부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표주박마저 내버려 소유한 것이라곤 이제 등불 하나밖에 없는 그는 고민 끝에 개 몇 마리와 함께 등불을 밝히고 초청에 응했다. 물론 그에게 후한 대접을 위함이 아닌 갑부임을 자랑하기 위한 초청이었다. 그의 집은 예상대로 무척이나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그 갑부는 자신의 집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디오게네스는 돌연 그 갑부의 얼굴에 침을 힘차게 뱉었다. 순식간에 당한 갑부는 놀라 말했다. "감히 여기가 어딘데, 그것도 내 얼굴에 가래침을 뱉어?" "집이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하군요. 가래침을 뱉어야 하는데 뱉을 곳이라곤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부정하고 더러운 당신 얼굴밖에 없군요. 그래서 뱉었어요." 가래침의 습격과 함께 충격적인 말을 들은 갑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인간들의 허세와 교만을 개똥만치도 여기지 않았던 디오게네스가 갑부에게 날린 통쾌한 증오의 한방이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디오게네스는 권력이나 세속적인 일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원했다. 무엇보다 당연시 여기는 사회적인 습관이나 사회구조를 탈피하고 싶었다. 이른바 기존의 사회적 사실을 멸시했고 도마에 세상을 올려놓고 생선처럼 마구 요리했다. 당시 누구도 디오게네스의 상식 밖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고정관념, 관습, 관행 등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이 최선이며 최고인 줄로 맹신하며 살았던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평생을 '늘 그러한 것', 기존의 틀을 해체하며 살았다. 디오게네스 사후 2000여 년 뒤 영국 철학자 베이컨은 '현재의 권위, 전통, 관습' 등에 의존해 생각하고 판단할 때 편견을 범한다고 했다. 이른바 '극장의 우상'이다. 이 우상에서 벗어나자. 지탄을 받더라도 말이다. 디오게네스처럼 '현실의 틀'에서 탈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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