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충북도 무형문화재' 보은 박영덕 각자장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제가 좋아하는 각자(刻字)에 꽂혀 터벅터벅 걸어오다 보니 이런 영광의 시간이 오네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30년간 한 땀 한 땀 칼 끝으로 선현의 가르침을 새겨온 보은 각자장(刻字匠) 박영덕(53)씨가 무술년 새해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각자장은 대량 인출(印出)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해 책판의 글자와 세밀한 그림을 새기고, 동시에 책판의 관리, 보수와 장판을 전담하는 장인을 말한다.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로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작업실 '운봉서각원'을 찾아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농한기때 군대에서 만난 조각칼 잡은 게 시작

1965년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 당시 보은농고 신설과 였던 자영농과에 진학해 농사에 대한 실용교육과 견학, 설계, 실행 등을 배우고 청년농부로 생활했다.

학교 때 배운 영농실력을 발휘해 소 한 마리를 12마리까지 늘려놓고 군대에 갔다 오니 집에는 농사용 소 한 마리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생계와 동생들의 수업료 부담을 위해 남의 땅을 빌려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24살이 된 어느 해, 농한기를 맞아 무료하던 차에 군대에서 후임 한 명이 나무 조각하던 게 떠올라 조각칼을 손에 잡은 것이 '오늘의 각자장 박영덕'을 있게 했다.

"너 서각하네? 내가 아는 후배가 상주에서 서각을 하는데 한번 배워볼래?" 동네 형님의 소개로 그는 인근 상주에서 뿌리조각을 배우게 되었고, 2개월 만에 3년된 선임을 능가하는 재능을 보였다.

농한기가 지나고 다시 보은으로 돌아온 그는 '서각'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했다. 그때 만난 스승이 동천 송인선 선생이다. 동천 선생은 버스에 무거운 나무를 싣고 대전까지 오는 그에게 칼 만드는 일부터 기본 각법을 전수해 줬다. 그렇게 서각에 빠져든 그는 소 키우던 외양간 한 켠에 불을 켜놓고 새벽까지 뚝딱 거리며 스승이 내 준 숙제를 하곤 했다. "농사 짓는 놈이 엉뚱한 일을 한다"며 아버지께 혼도 많이 났지만 그는 지독한 외양간 냄새도 모른 채 서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구름 위로 치솟은 봉우리가 되라" 스승 뜻 받들어

농사와 서각을 병행하던 그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신농정 5개년 계획'중 '농어촌특산단지사업'에 과감하게 신청해 1997년 현재의 '운봉서각원'의 문을 열었다. 그땐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도 동네에서 가장 크게 지어진 건물에 흐뭇해 하셨다고 한다.

스승인 동천 선생이 '구름 위로 치솟은 봉우리가 되라'는 뜻을 담아 '운봉(雲峰)'이라는 호를 주었고, 그는 그런 스승의 뜻을 받들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지속했다. 그렇게 실력이 늘면서 지역 동창회나 기관의 현판제작 의뢰가 알음알음 들어오게 되었고, 2000년에 운봉서각원을 방문한 금속활자장 故 오국진 선생이 "청주에 한번 나와라"는 말씀과 함께 금속활자 만드는 법, 목판 제작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내친 김에 서예, 그도자기까지 배워 서각과 타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공방을 오픈한 해에 IMF가 닥쳐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막노동까지 하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서각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겠더라구요. 칼 끝으로 한 자 한 자 새기는 시간이 행복했고, 글자 속에 담긴 선현들의 지혜와 정신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죠."

그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말은 '심조자득(深造自得), 한 사람이 한가지 일을 오래도록 하다 보면 스스로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왕실책자에서 배운 당대 각수들의 품격과 배려

어려움 속에서도 서각 외에 다른 분야를 왕성하게 섭렵한 그는 2009년부터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도전해 첫 해 각자부문 입선, 2010년·2011년 입선, 2012년 특선, 2014년 문화재청장상에 이어 2015년 훈민정음 언해본 15판을 출품해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작품은 훈민정음 언해본 책판과 능화판을 전통재료와 기법으로 제작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각자장으로 명성을 쌓은 그는 전국 최고의 각자장들과 함께 서울대 규장각의 책판 문화재 인출사업, 한국국학진흥원의 삼국유사 조선 초기본 복원사업 등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다수 참여했다. 이들 사업을 통해 당대 최고의 각수(刻手)들이 만들어낸 왕실 책자의 품격과 읽는 사람을 배려한 고도의 지혜가 밴 기술을 배웠다. 또 훈민정음 작업을 통해서는 책 속에 배어있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 큰 마음의 감동을 받기도 했다.
 

무술년 새해 3번째 '훈민정음 언해본'에 도전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 까지는 원목을 고르고 소금물 침수·후숙 → 원목 제재 → 판목 재임 → 판목 삶기·자연건조 → 판목 재단·마름질·마구리 → 자본 선정 → 판하본 제작 → 판하본 붙이기·기름 먹이기 → 글자 새기기 → 바닥 파내기 → 초벌 인출 → 수정 새기기 → 마구리 조립 → 옻칠 또는 먹물 취색 → 완성된 책판 본 인출 → 장책하기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긴 세월 동안 고도의 집중력으로 나무를 다듬고 깎는 그에게 응원군이 생겼다. 바로 그의 세 자녀들이다. 큰 딸 해원 씨는 문화재수리기능자로, 둘째딸 지원 씨는 안동대 민속학과 졸업반으로, 그리고 셋째인 막내아들 성원 씨는 충북대 종이목재학과를 진학해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하는 일이니 배워둬라"며 어린 시절부터 각자를 가르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무엇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마음의 길을 따라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온 그에게 지난해는 고생한 보람이 많았던 해다. 무술년 새해 그는 3번째 훈민정음 언해본을 목판에 새기고 있다. 이번에 새기는 훈민정음 언해본은 공방에 두고 이 곳을 찾는 학생들의 교육용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록문화의 복원'이라는 마음의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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