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사생활이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이 모르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얼마나 될까? 남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행동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만 그런 행동이 별로 없다. 촘촘히 짜이어진 사회구조의 틀에 얽혀 대부분 행동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드넓은 황야를 훤히 내려다보듯 우리는 누군가에, 첨단기계에 의해 벌거벗긴 채 드러나 있다는 얘기다. 아니 드러나는 것이 아닌 감시당하는 것이 옳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범죄나 규율, 관습의 사소한 위반이 아니라도 나만의 비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모두 드러난다. 무엇이든 감출 수가 없다.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말이 있다. 1791년 영국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재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설계한 원형감옥 건축양식이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보다'를 뜻하는 'Opticon'이 합성된 글자다. 글자대로 보면 '전부 다 보다'는 뜻이다. 왜 원형감옥을 고안했을까? 감옥은 죄수를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하는 폐쇄공간이다. 죄수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원형감옥이 고안됐다. '최소 비용'에 '최대 감시효과'를 노린 장치다. 공리주의에 입각해 고안됐지만 실제 실현되지 않았다.

'판옵티콘' 구조는 특이하다. 중앙을 비운 채 원형 건물로 감방을 만들었다. 원형 건물 가운데 감방보다 높은 원통형 감시탑이 있다. 감시탑은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졌다. 낮이고 밤이고 감방, 감시탑 밖에서는 절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죄수들이 감시탑에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판옵티콘'에는 감시자를 두지 않는다. 모든 죄수가 '판옵티콘'에는 감시자가 있어 24시간 자신들을 감시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시자가 '사람'이 아닌 '판옵티콘 건물' 자체인 셈이다. 죄수들은 감옥의 규율을 철저히 지킨다. 규율준수가 몸에 밴다. 그 후로는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시선의 불평등을 낳는 불합리한 구조다. 감시자는 죄수를 볼 수 있는 반면, 죄수는 감시자를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에도 죄수들은 할 말은 없다. 어차피 죄수와 감시자는 불평등의 관계가 성립되니까.

사회 도처에 '판옵티콘'이 있다. 출근하면 먼저 만나는 '판옵티콘'이 엘리베이터다. 그곳에 폐쇄회로가 대기하고 있다. 집을 나서면 도로, 버스, 지하철, 건물 내.외부 등 곳곳에 부지불식 찍어대는 감시망이 있다. 자동인출기에 남이 놓고 간 돈 등 물건을 가지고 가면 절도다. 다른 차의 블랙박스가 내 차를 마구 찍어댄다.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는다. 하루 종일 감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뭣 하나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인권침해다.

'판옵티콘'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용카드도 있다. 어디서 물건을 샀고,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렸는지 기록이 남는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사법기관에서 압수 수색하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컴퓨터다. 기록을 지워도 복구된다. 꼭꼭 숨겨둔 컴퓨터 기록도 해커들에겐 속수무책이다. 인터넷 검색기록을 통해 구매양상 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수불석기(手不釋機)인 스마트폰은 가장 막강한 '판옵티콘'이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견인차가 5분 이내로 도착한다. 내가 숨어 있어도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으면 장소가 금방 탄로 난다.영상통화는 공간을 이동시킨다. '판옵티콘'이 죄수를 감시하듯 하늘의 '인공위성'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위성항법장치(GPS)가 수신해 위치를 추적한다. '꼼짝 마라'다. 이른바 '정보기술 판옵티콘'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처럼 현대사회는 정보기술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지식에 근거한 권력은 정보기술을 독점한다. 지식과 권력 그리고 정보기술은 삼위일체다. 삼위일체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정보기술 판옵티콘'의 손안에 들어있다. 군사작전상 완전 포위됐다. 건물 자체가 다수 죄수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소수 권력자가 정보기술을 이용해 우리 모두를 감시한다. 우리는 모두 원형감옥에 수감된 죄수다. 분명 내 머릿속에는 위치추적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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