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22. 차나무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바람이 쌀쌀했다. 뻣뻣한 잎들은 북풍한설을 이겨낸 흔적이 역력했다. 동그랗게 잘려나간 가지 끝은 하얗게 말라있고 성글게 매달려있는 두툼한 잎들은 굴곡진 삶을 견뎌온 손바닥 같았다. 일탈을 꿈꾸며 거침없는 자유를 누리고자 찾아온 제주도 오설록의 차밭.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얼기설기한 찻잎들이 "나 살아있어요" 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 단발머리 여학생 같이 잘 다듬어져 줄지어 있는 차나무를 보니 중국의 대차수(大茶樹)가 떠오른다. 3000살의 나이에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웅장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차나무를 보고 어느 누가 장수를 바라지 않겠는가. 차나무의 수명이 사람의 나이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유년기와 노년기의 차이점은 분명 있겠다. 차의 품종도, 재배방법도 우리나라와 다른 외국의 재배용차나무는 30년이 지나면 갈아엎고 다시 식목을 하거나 5년 정도의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야윈 차나무 속 깊이 작은 점하나가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올록볼록 야무진 점들이 군데군데 매달려있다. 차나무 열매였다. 이미 늙어 땅속에 묻혀 후손들의 기름진 옥토가 되어주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을. 일반 나무와는 다른, 작년에 피었던 꽃이 스러져 열매 되어 떨어지지 않고 새롭게 피어날 꽃과 마주보는 '실화상봉수'의 임무를 타고났으니 삶을 마감하고도 땅에 눕지 못한다. 일념 정심으로 가을에 피어날 꽃만 기다리고 있는 차열매가 오작교의 견우직녀만큼이나 안쓰럽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또다시 메아리친다. 왜,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마주보고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란 이름으로 이 땅에 뿌리내려졌을까. 우주의 모든 자연은 인간의 산교육이라는데, 상서로운 나무라고 알려진 근거가 단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정신적 물질적인 부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그것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뭘까. 신만이 아는 의미가 내겐 숙명 같은 숙제로 남아있다.

비릿한 바닷바람이 차나무를 품고 흩어진다. 나의 머리와 오장은 그새 제주도의 짭짤한 차 맛을 탐닉하고 있었다. 어떤 느낌일까 목이 탔다. 같은 맛이라도 현지에서 경험하는 생동감은 파격적인 품질로 인정받기도 한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설록 뮤지엄의 넓고 긴 공간은 나그네들로 붐볐다. 가족들과 다양한 체험을 하는 공간과 차를 이용해 만든 화장품과 향수, 차의 종류와 생활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연휴를 즐기는 제주도의 관광객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세작을 우린 다반을 들고 서성이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 유리창 밖으로는 광 할 한 차밭이 초원을 이루고 알록달록한 실내는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이곳은 마치 거대한 대화의 장이 열린 듯했다.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순간 알아챘다. 태초에 신께서 세상에 하나뿐인 차나무를 이 땅에 내린 이유를. 생명이 있는 우주의 만물은 모두 바라보기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목적이든. 대추나무도 마주 보아야 열린다는 우리의 속담이 삶의 진리였다. 바라보아야 열리고, 마주 보아야 소통되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을 바라보면 자연을 얻고, 사람을 바라보면 사랑을 얻고, 욕망을 바라보면 물질을 남긴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원칙을 오늘 작은 열매에서 발견했다. 차를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도 열매 못지않다. 일탈을 바라본 즐거움이 기쁨과 희망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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