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숭선사지에서 나온 금동보살(金銅菩薩)이 천년만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지난 2000년 충청대박물관(관장·장준식)에 의해 발굴된 금동보살상은 출토당시 심한 부식에다 두터운 흙으로 덮혀 눈, 코, 입, 귀와 상호(相好·얼굴)를 속속들이 알 수 없었다.
 머리에 꽃잎 모양의 삼산관(三山冠)을 쓴 것으로 보아 보살이 확실하고 상호가 아주 예뻤다는 사실은 발굴당시에도 파악이 됐었다.
 이 보살상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김봉건)의 2년에 걸친 보존처리 끝에 세월의 더께를 벗겨내며 되살아 났다. 불가의 장구한 시간으로 보면 천년도 찰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보관의 높이는 8cm 정도. 상호는 뚜렷한데 애기부처인양 천진난만하다. 세속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처와 보살을 구별치 않고 함께 호칭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좀 다르다.
 부처는 득도를 하여 피안으로 건너간 각자(覺者)인데 비해 보살은 해탈 일보직전에서 이를 거부하고 중생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보류형 각자다.
 보살은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 여러 형태이나 그 대표적 보살은 역시 민중의 곁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보살과 부처의 구별은 의외로 간단하다. 머리에 모자같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면 보살이고 그렇치 않으면 부처다.
 보살은 보리살타(Bodi Sattva)의 준말로 보(菩)는 슬기의 닦음이요, 살(薩)의 복의 닦음이라는 해석도 있다. 국보 제 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외국에서 조차 마스터 피스로 인정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가히 그 미소는 모나리자를 압도한다.
 숭선사지 출토 보살상은 머리부분인 보살두(菩薩頭) 1점과 2개체분의 동체부 파편으로 구별된다. 보살두는 거의 완전하나 동체부는 파편 정도다. 그 조각에서 보살상의 모습이 파악된 것만도 여간 다행이 아니다. 동체부는 어깨에 하늘옷, 천의(天衣)를 표현하였고 손모양은 두 손을 모은 합장인(合掌印)을 하였다.
 무슨 불심이 그리 깊었길래 이 절은 그토록 화려한 모습을 하였을까. 지붕을 아름답게 꾸미고 기와를 고정시키는 연봉장식은 철제 바탕위에 얇은 금동판을 덧씌웠으니 어머니 신명순성왕후를 위하는 고려 광종(954)의 불심, 효심도 짐작할만 하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백자와정(白磁瓦釘)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바 있으나 이러한 형태의 철지금동장와정(鐵地金銅裝瓦釘)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 본다면 불심아래 펼쳐진 충북지역 고려금속공예의 하이테크를 재평가해야 할 처지다.
 청주 용두사지철당간(국보 제41호)이 우연이 생겨나고 사뇌사(思惱寺) 금속공예품이 저절로 생겨난게 아니다. 오늘날 청주의 자랑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금속활자본 ''직지''도 이러한 금속 세공기술의 노하우 축적아래 탄생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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