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가 간다] 고랭지 배추도 못 피해간 폭염
윤보근 시민기자 (애쁘르팜) 모종 재배부터 난항… 농사 포기 농가 속출 뙤약볕 치명적, 밭에 이식해도 적응 못해 생존율 하락·수확 감소 여파 가격 불안정
[중부매일 윤보근 시민기자]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은 고랭지 청정 지역의 맑은 공기와 큰 일교차 덕분에 이곳에서 자란 배추는 단맛이 뛰어나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다. 매년 가을, 김장을 앞둔 소비자들이 미원면 절임배추를 찾는 것은 그만큼 신뢰가 쌓여온 결과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8월의 밭 풍경은 녹록지 않다. 농민들의 얼굴에는 웃음 대신 긴장과 피로가 드리워졌다. 어느 해부터인가 배추를 심는 순간부터 농부들의 싸움은 ‘성장’이 아니라 ‘생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밭에 배추를 심어놓으면 크게 걱정할 게 없었어요. 하늘만 도와주면 잘 컸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배추를 심는다고 다 크는 게 아니에요. 더위가 너무 심해서, 이제는 밭에 심은 배추를 ‘얼마나 살려낼 수 있느냐’가 제일 큰 문제지요.”
올해는 특히 ‘심기 전’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농민들은 배추 씨앗을 파종해 모종으로 기르는 과정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보통 모종을 키우는 하우스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기온이 연일 치솟으면서 모종이 제대로 뿌리도 내리기 전에 잎이 녹아버리는 일이 속출했다. 결국 일부 농가들은 이 단계를 넘기지 못해 올 가을 배추 농사를 아예 포기해야 했다.
배추를 심는 문제를 넘어, 아예 ‘시작조차 못 하는’ 농가들까지 생겨난 것이다.
밭에 배추를 심은 농가들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한낮의 고온은 어린 배추 모종에게 치명적이다. 심은 배추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농민들은 같은 밭에 두 번, 세 번씩 다시 심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나 다시 심는다 해도 모든 배추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력과 비용만 늘어나고 수확량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밭 한쪽에서는 스프링쿨러가 쉼 없이 물을 뿌려댐에도 불구하고 땅은 뜨겁고, 뙤약볕은 매섭다.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처럼 농민들의 땀방울은 단순히 힘든 여름 이야기가 아니다. 생존율이 떨어지면 수확량이 줄고 가격이 불안정해지며 그 영향은 결국 소비자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매년 김장철이면 배추값이 ‘금추’라는 별명을 얻는 배경에는 이렇게 농촌의 애환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힘든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배추를 심고, 땀 흘리며 물을 주는 손길은 희망을 향한 발걸음이기도 하다.
“올해는 어렵더라도, 내년에도 또 심어야지요.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어느 농민의 이 말은 체념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다짐이자 농촌을 지켜내려는 의지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밭 한가운데에서 이어지는 이 분투는 단순한 농사일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는 싸움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약속이다.
‘심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힘든’ 오늘이지만, 그 속에서도 농민들은 다시 씨앗을 뿌리고 내년을 꿈꾼다.
그 땀방울이 모여 결국 희망의 싹을 틔우고, 농촌의 내일을 지켜내고 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더해져야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