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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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측정하려면 저울을, 길이를 재려면 자를, 차량이나 송구(送球) 속도를 측정하려면 스피드건(speedgun)을, 온도를 측정하려면 온도계를, 혈압을 재려면 혈압계를 사용한다. 이처럼 다양한 단위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도구가 필요하다. 이들 도구는 객관성을 담보한 척도(尺度:measure), 기준(基準)이어서 측정 결과에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공간적 한계와 인식의 대상인 사회현상을 평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현상(社會現象)을 어떤 기준에 의해 해석하고 이해하는가 말이다. 전문가이든 일반인이든 분명 어떤 이해의 틀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나중의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사회현상을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만 볼 때도 있다. 사회현상이 눈이나 귀를 통해 뇌리를 그냥 스쳐가는 때로, 뇌리는 보고 들은 사회현상을 가공(加工)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현상에 대해 판단, 평가를 해야 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반드시 판단, 평가,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현상을 새롭게 가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기준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현상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 기준만 이해하게 된다.

그 기준이 편견(偏見)과 선입견(先入見),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과 문지불약견지(聞之不若見之)다. 편견은 사회 상황이나 집단, 개인 등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를 말한다. 대체적으로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일단 편견에 사로잡히면 사회현상이나 집단, 개인 등을 그릇되게 평가,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편견은 현실검증을 도외시한다. 편견은 마음속에 늘 자리해 흔들리지 않는 관념이 고착되는 '고정관념'이 되기도 한다. 학습 되어 편견에 빠지면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사회현상을 왜곡되게 평가 판단하게 한다.

선입견(先入見)은 사회현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타당성이 결여된 평가 · 판단 등의 원인이 되는 지식이나 이해의 틀을 말한다. 사회현상을 직접 경험하기에 앞서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 매체, 전문가, 서적 등에서 간접적으로 습득한 정보나 지식에 근거해 판단, 평가하려는 예비적 기준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다소 도움이 되지만 사회현상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심이 배제되는 것이 문제다. 이미 정해진 기준에 사회현상을 억지로 끼어 맞추는 우를 범하기 일쑤다.

'백문불여일견'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란 뜻이다. '문지불약견지'는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다<荀子:儒效篇>'란 의미다. 이들 모두 사회현상을 직접 오감으로 경험해야 사회 상황에 대한 진실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바른 평가와 판단에 이르는 인식의 기준이다. 편의상 남 얘기나 검색 등으로 얻은 틀에 근거해 미리 인식하거나, 틀을 고정화시켜 다른 면(기준에 의해 미리 배제한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를 경계하는 잠언(箴言)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사회현상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정확성과 객관성이 요구된다. 정수기의 생명이 오염물질을 거르는 필터에 있듯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 역시 가치 판단이 배제된 틀에 있다.

'편견과 선입견'은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에 있어 지름길인 반면, '백문불여일견과 문지불약견지'는 에움길이다. 지름길은 보다 빨리 사회현상에 대한 평가, 판단할 수 있지만 그만큼 주관적 가치 개입으로 단면적 인식에 그친다. 반면 에움길은 시행착오가 수반되기 때문에 사회현상에 평가, 판단이 지체되지만 정확성과 객관성을 보장받을 수 있어 비교적 다면적 인식이 가능하다.

에움길이 지름길보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 언론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많은 언론사의 경우 기자가 현장에 없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노트북을 끌어 앉고 책상에 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백문불여일견과 문지불약견지'를 저버리는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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