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친구가 지난해 말 우연한 기회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당의사 왈(曰), "가족 중에 암으로 고생하신 분이 있느냐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뒤 "왜 이리 늦게 병원을 찾아 왔느냐고 나무라면서 자신의 소견으로는 위암이 확실해 보이지만 조직세포를 떼어 정밀검사를 해본 뒤 이를 토대로 다시 판단해보자고 하더라는 것.
 사형선고와 같은 청천벽력의 진단을 접한 친구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곧바로 낚시도구를 챙겨 음성의 한 저수지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며 홀로 쓰디쓴 소주잔을 들이켜야 했다.
 아내에게는 속내도 못털어 놓고 집을 벗어나 빙빙 도는 동안 친구는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혹시 나로 인해 원한을 산 사람은 없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와 가족 이웃들에게 좀 더 잘해 줄걸 하는 후회와 회한(悔恨)의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는 것.
 그러기를 20여일, 마침내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다시 병원을 찾은 친구는 의사의 [급성 위염]이라는 진단에 아내가 한 걱정을 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이제야 살았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요즘은 인생을 다시 사는 심정이라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누구든 자신이 얼마나 더 오래살 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을 한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행동들을 하게 될까.
 "만약 불의의 사고로 뇌사판정이 날 경우 장기를 기증하고, 남은 육신은 화장하며, 재산의 3분1 이상은 반드시 이웃 사랑과 환경보호에 써 달라.
 명예퇴직한 40대의 어느 중견 법관은 법원 통신망을 통해 퇴임사와 함께 유언장을 작성해 공개한 적이 있다.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 유언장 은행으로 통하는 유언장닷컴(yoounjang.com) 사이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 들어가 순서대로 자신이 걸어온 길과, 내 삶의 재산정리,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세상을 떠날 때 연락할 사람 명단 등을 찬찬히 떠올리다 보면 누구나 지나온 역정을 되짚어보게 되고, 다시 사는 인생의 기분을 절감할 수 있다.
 [만약 내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이라는, 온통 백지로 된 책을 출간해 한때 화제를 뿌렸던 이 사이트의 개설자 이성희 대표.
 백지로 발간된 책이 오프라인의 유언장이라면 유언장 닷컴은 온라인 유언장이라고 설명하는 이씨는 "유언장 작성은 사후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을 보람있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은 분명 가치가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가듯,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정리한다면 오늘의 삶은 더욱 보람있게 꾸며 나갈 수 있다.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해는 끼치지 않으며 그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다시 사는 인생의 참모습이 아닐까. j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