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돌이켜보면 잊혀 지지 않는 그 추억을 찾아 깊이 간직한 보물창고를 열어본다. 문맹타파와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선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과 최영신의 동지애처럼 그 해 여름을 그렇게 보냈던 인생 한 자락이다. 방학동안 농촌 일손을 거들며 노동의 의미와 체험을 통한 농촌봉사활동으로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다. 사랑의 마음이 시킨 일이었기에 마음을 같이 한 후배들과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며 젊음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런 두려울 것 없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계획하고 준비함에 일사천리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괴산 청천의 작은 시골집에서 아이들이 다닥다닥 모여 앉아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맛있는 간식과 노래. 율동. 색종이 접기. 그림그리기. 학습을 돕기 위한 공부방. 미니올림픽 등 한 마당 잔치를 마련한 것이다. 2박3일간 여름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고단한 봉사 후에 얻어진 뿌듯함과 만족감을 선물 받은 듯 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사립문 밖에서 눈물 글썽이던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때는 힘들다는 것이 무엇인 줄 몰랐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예상치 못했다. 우리들은 의논 끝에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봉사를 하기로 하고 일요일 오후시간을 기꺼이 내 주기로 했다.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봉사가 쉽진 않았지만 끝까지 남은 후배와 둘이서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매 주 달려갔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어린 소녀는 우리들을 무척 따랐다. 죽은깨가 많았던 단발머리 숙이는 유독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공책을 찢어 쓴 어린 영혼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사랑의 부재가 남긴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을 다독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3번 갈아타고 금신리 마을로 발길을 향했던 그 해 여름. 사랑으로 채워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만남 보다는 헤어짐이 더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젊은 날 여름 농촌봉사활동은 결국 나를 돌아보고 나를 키운 가치있는 인생수업이었다. 오늘날 농활(農活)이란 이름으로 본질과 순수를 잃어버린 단체의 힘으로 이용되어지고 있는 퇴색되어져가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흙냄새조차 모르고 시멘트 바닥위에서 자란 나는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정겹고 즐거웠다. 어설픈 초보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어쩌면 그 해 여름 농촌 봉사활동의 뜨거움과 애틋한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젊은 날 아름다운 추억은 오늘 나에게 반추의 에너지를 준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던 엄마가 만들어주신 동태찌개. 엄마 맛을 잊을 수 없듯 행복한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되는 맛남이다. 여름을 함께했던 그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한 숨은 봉사를 나누는 의사선생님이 되었다.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던 어린 숙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성숙한 아줌마가 된 어린 소녀 현숙이가 "선생님" 하고 부르며 어디선가 툭 튀어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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