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오색빛깔 단풍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자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려 하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어느 때보다도 오묘하고 예쁘다. 손자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동물원을 가자 놀이공원을 가자 주문도 많다.

좌구산 휴양랜드를 경유해 백곡(栢谷) 김득신 선생의 시비가 있는 증평 문학공원으로 향했다. 유택이 모셔진 산자락은 어릴 적 뛰놀던 뒷동산 같아 정감이 갔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롭고 행복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아련히 떠올라 미소 지어 본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지만, 결국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라는 김득신 선생이 직접 지었다는 묘비명을 되새겨보며, 독서왕 김득신 문학관으로 향했다.

손자에게 김득신 선생은 선대 할아버님이라고 하며,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책 한 권을 석 달이나 읽고도 첫 구절조차 기억 못 하는 소문난 둔재였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노력하여 독서왕 김득신에서 조선 중기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고, 39세에 사마시에 합격, 59세에 문과 증광시에 급제, 65세에 풍기군수, 75세에 사도시정으로 증광시 시험관을 역임하고, 이후 가선대부에 올라 안풍군에 책봉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하니 감탄해 마지않는다.

김득신 선생 생애의 에피소드를 스토리텔링화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손자, 독서에 좀 더 흥미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취묵당 카페에서 바라보는 보광천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내친김에 남편이 나고 자란 괴산 능촌리 취묵당으로 향했다.

취묵당 바로 밑까지 찻길이 닿아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취묵당은 백곡(栢谷) 김득신 선생께서 김시민장군의 사당인 충민사 옆 괴강가에 건축하고 독서재로 이용하던 곳이다.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의 손자가 바로 김득신 할아버지라고 하며, 선생의 탄생부터 취묵당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의 아버지가 노자가 나오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는데 장차 큰 인물이 되길 기원하는 뜻을 담아 아명을 '몽담(夢聃)'이라 하였으나 신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지 않게 머리가 나빴다는 이야기, 노둔한 천품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여 시(詩)로 독자적인 경지에 이른 '고음(孤吟)과 다독'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백이전(伯夷傳)을 무려 1억 1만 3천 번을 읽어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하였으며,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뛰어난 문장이 세상에 알려지자 임금님이 그의 시 '용호'를 보고 감탄했다."라는 이야기까지. 지루할 텐데도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는 손자들이 미쁘다.

전면 기둥에 '용호'를 양각한 주련이 있어 읽어가며 해설까지 해주니 엄지 척 할머니 최고란다.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는 백곡, 취묵당 풍경을 그림같이 묘사한 시가 '용호(龍湖)'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산, 강, 나룻배, 어부 등. 평범한 일상의 단어가 주옥같은 시어로의 변신은 학문이 그만큼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백곡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든다는 긍정 마인드에 부모의 믿음과 사랑이 더해져 바보에서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거듭났다. 조바심내지 말고 믿음과 사랑으로 손자를 지켜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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