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장

충북은 3개의 시와 8개의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도와 달리 시군간의 편차가 유난히 큰 편이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가 5년 마다 지정하는 '성장촉진지역'이 11개 시, 군중에서 5곳이나 지정되어 있다. 북부에 단양, 중부에 괴산, 남부에 보은, 옥천, 영동이다. 이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국비지원이 추가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도에서도 이 지역 기업들을 위해 '임금격차 해소지원 사업(現 성장촉진지역 청년근로자 근속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지역 기업에서 1년 이상 근무한 청년이 근속할 수 있도록 2년 동안 매달 30만원의 임금을 추가 지급하는 사업이다. 4년째 운영하고 있는 사업으로 사업 만족도가 높게 조사되고 있다.

최근 참여기업 점검을 다녀온 곳 중 하나가 영동군에 소재한 포도즙 생산기업이다. 소기업이지만 건강식품 박람회 등에서 시음으로 제품의 우수성을 검증받아 판매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의 영향은 이런 작은 기업에게 직격탄이었다. 대부분 전시행사가 취소되고 소비자와 직접 만날 방법은 없고, 갑작스럽게 온라인 판매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진흥원도 홈&쇼핑에서 홍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 그나마 지금은 회복세에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닌데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전제된 것이지만 영동군의 도움도 컸다고 생각된다.

영동군은 기업이 많은 곳이 아니다. 관광자원은 풍부할지 몰라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은 포도다. 영동군에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포도가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주목했다. 국내 유일의 포도 와인산업 특구로 지정받았고, 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우수 특구로 표창받기도 했다. 지역의 포도 농가를 와이너리로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지원금도 마련했다. 체험관광 유치를 목적으로 와인열차, 와인터널을 조성했다. 와인 생산에 적합한 신품종의 포도를 개발하고 생산된 포도의 해외 수출길도 열었다. 와인터널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관련 공무원과 종사자 7명 전원이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놀랍다. 정말 정성스럽게 노력하고 있음이 보인다.

한편 최근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3차 대유행이라고 한다. 연일 300명을 웃도는 확진자 발표가 이어진다. 발생지점도 식당, 주점, 사우나, 헬스장, 노래방 등 다중이용시설이 대부분이다. 수도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강화했고, 충북의 경우 음성군도 1.5단계로 격상했다. 다행히 충북지역은 음성을 제외하고는 집단감염의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늘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줄이고 생활패턴도 단순화했다. 걱정은 이런 도시의 수도승같은 삶이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올해 충청북도가 고용노동부 공모에 선정되어 만든 조직인 고용안정선제대응패키지추진단에서는 최근 100여 기업을 방문하여 면담한 결과를 비공식적으로 알려왔다. 그에 따르면 뿌리산업, 철강산업 등은 힘겨운 시간을 경험하고 있고, 반도체기업은 큰 타격이 없으며, 음식료품 생산기업은 편차가 큰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한다. 즉, 간편식 등 냉동식품을 제조, 유통하는 기업의 경우는 코로나로 인한 집콕족의 증가로 매출이 상당히 증가한 반면 규모가 작은 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들도 인테리어(실내건축), 간판광고 등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의 일감을 소화하고 있다고 하고, 식당의 경우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올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의 확산은 장기화되면서 결국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경제 환경까지도 다시 판을 짜도록 만들고 있다.

영동군의 대응에 관심이 간다. 긴급재난지원금 수령자에서 제외되었던 군민을 대상으로 26억의 군비로 '청,장년 경제활성화 지원금'을 1인당 10만원 지급한 이력이 있다. 또한 코로나가 잠시 주춤했던 지난 10월에 2주간의 착한 소비 캠페인을 전개했다. 지리적 이점도 없고 기업유치에 여러 모로 불리한 여건이지만 포도라는 농작물을 기반으로 지역경제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역린(逆鱗)'을 보았다. '정유역변'을 소재로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을 재미있게 연출한 작품이었다. 시대상이야 어찌됐든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극중 상책(정재영 분)에게 대신들과의 경연에서 읊게 한 중용 23장의 구절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영화의 끝에서도 정조가 다시 한 번 읊조리는 장면이 나온다. 머릿속에 남아 가슴에 새길 문구로 자리 잡았다.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 원장
연경환 충북기업진흥원장

11월. 한 해의 일을 잘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이다. 동요하지 말자. 부화뇌동하지 말자. 지금까지 하던 일을,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더 최선을 다해 하자. 정성스럽게 되어 겉으로 배어나올 때까지. 영동군 사례로 보듯 정성을 다하는 꾸준함이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을까. 기업들이, 이웃인 소상공인이 다시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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