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나를 낳으실 때, 어머니는 서른아홉, 아버지는 마흔 다섯, 나는 막내였다. 사십대 중반 이전의 부모님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럴 듯하게 차려입으신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나도 어머니도 안됐다고만 생각해왔다.

어머니는 1919년에 태어나 1991년에 돌아가셨다.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의 깊은 계곡을 건너고, 시리고 추운 섣달을 견디듯 어려운 시절을 사셨다. 학교라는 데를 다닌 적이 있을까? 추측건대 없을 게다. 간신히 한글을 깨우쳐 이야기책을 읽으셨다. 열아홉쯤에 시집와 위로 대여섯 자녀를 잃고 삼남 일녀를 두셨다. 남편인 아버지는 성실한 듯 무능하셨다. 겨울 추운 새벽에 양식 없는 부엌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셨을까, 수시로 흘린 그 눈물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최근에야 나를 벗어나 어머니의 마음에서 추측해 보았다.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조짐일 게다. 서글펐다. 어느 딸인들 부모슬하에서 애지중지 자라지 않았을까?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까.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어쩌다보니 자식들은 줄줄이 태어났지만 한두 해를 버티지 못하고 부모 곁을 떠나고, 늪인 듯한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 친정은 가까워도 가지 못하고 이해해 주는 이 하나 없을 때, 맨 정신으로 버텨내신 게 용하다.

그 가난한 시절에 속병인지 화병인지를 얻으셨단다. 병원도 제대로 갈 수 없어, 독한 술과 담배로 속을 다스리라고 한약방 의원쯤 되는 이가 알려주었으리라. 젊은 나이에 익힌 술과 담배를 곱게 여길 이는 또 누가 있을까? 어찌 주변과 살가운 이웃되어 살 수 있으랴. 열등감과 수치심이 적지 않았으리니 잔뜩 경계하는 마음으로 남을 대하고, 서운한 일이나 오해는 쌓여만 갔다. 내 힘이 없으면, 내 것이 없으면 남들에게 무시만 당한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처럼 대하셨으리라.

그렇게 자녀들을 잃고도 맏아들을 스물다섯, 막내를 서른아홉에 두셨다. 어머니는 술을 드시면 목과 얼굴이 빨개져 신세한탄을 하시며 자주 눈물지으셨다. 벗어나기 힘든 가난이 지긋지긋하셨을 게다. 그 가난 속에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어 그 가난을 물려줘야 하는 서글픔이 어찌 서럽지 않았으랴.

겨울은 항상 길고 추웠다. 먹고 입고 땔 것이 넉넉지 못하니 힘에 겹고 고달팠다. 그 마음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아 초겨울이 되면 연탄을 들여라, 쌀을 사다 놓아라, 김장을 담그라는 독촉으로 이어졌다. 그 시절 몰랐던 어머니의 심정이 이제 이해가 된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가난해도 풍요로운, 적어도 끼니 염려, 추위 걱정에서 벗어난 이 때에 어머니께 더욱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앞선 세대들이 겪어온 고통의 그 깊은 골짜기를 이제 누가 기억이나 하려나. 오늘 밤 불쌍한 어머니가 떠올라 잠 못 이룬다. 살아계실 때 못한 생각 더 해보아 무엇 하나. 어려운 시절 사랑으로 자란 철없던 막내는 이순이 지나 마냥 어머니가 그립고 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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