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음성 용천초 수석교사 이태동

2021년 새해도 벌써 보름이 돼 간다. 그런데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잘 모르겠어. 언제가 연말이었고 언제가 연초였는지 실종된 느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됐다.

옛날 방학 시즌과 비교해 보면 요즘 방학은 상당히 달라진 풍경이다. 어쩔 수 없이 비대면에다가 간소한 종업식, 졸업식을 해야 하니….

눈 내리는 오후다. 온통 주변이 하얗게 변해가니 새로운 세상이다. 우울한 기분이 날아간다. 그러나 걱정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세상 얘기 같지만 '이것' 앞에서는 평소 그렇게 큰소리 내며 주변을 무색하게 하던 덩치 큰 이들도 벌벌 떤다. 용기 있고 의연하던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걱정 빛이 가득하다. 아이들만 신난다. 저 눈(雪)이 만일, 내일 아침까지 녹지 않고 얼어붙으면 어쩌지? 길바닥이 얼어 오도 가도 못하는 빙판길이 된다면 출근길 사고위험과 업무상 불이익이 생기겠지?

어른들 머릿 속은 복잡해진다. 빙판길, 그저 도로 위에 투명하게 알 수 없는 몇 겹의 막이 생겼을 뿐인데, 강추위에 꿋꿋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쓰레기더미를 실어 나르는 환경미화원,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는 공무원, 자원봉사자, 자기 집 앞을 손수 청소하는 시민들 등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제법 살만한 세상을 꿈꾼다.

'종일 튀김 솥 앞에 서서 /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 그거 왜 발라? / 예뻐지려고 / 웃으며 돌아앉아요 / 얼마나 예뻐졌을까 /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 양팔에 피어 있는 크고 작은 꽃들 /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 아릿한 꽃향기에 / 눈이 촉촉해져요.' - 김광희의 '엄마의 꽃밭' 전문(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겉으로 보기엔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꽃밭이 등장하여 따뜻한 여름을 연상케 하나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다. 낮에 열심히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옆에 아이는 엄마를 걱정하고 오히려 엄마에 대한 동정심을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킨다. 어린 자녀가 있는 엄마의 세계는 대부분 자녀 양육과 일을 병행해야 하기에 늘 시간과 줄다리기다. 게다가 아이를 맡길 때가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학원, 지역아동센터, 돌봄 교실, 친척, 부모, 친구, 이웃에 맡기곤 한다. 그것도 어려운 가정은 아이가 혼자 있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보고 듣고 공부하는 세상이 부모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

아이와 소통해야 할 시기를 놓쳐 자칫, 부모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다행히 아이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일 경우에는 안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부모 영향권에서 벗어나 영상미디어 중독 수준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불규칙한 식사, 수면시간, 어울리지 못하는 교우관계, 주변 사람들과 갈등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그것은 바로 독서에 흥미를 붙이고 좋은 생활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이태동 음성 용천초 수석교사
이태동 음성 용천초 수석교사

틈날 때마다 부모는 아이와 책을 통해 표현하고 자신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말하게 하거나 독서 환경을 만들어 간다. 이해, 공감, 배려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한다. 일본 도쿄 가미히라이 초등학교의 책 읽기, 책 읽어주기 활동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국어, 수학능력 향상은 물론 긍정적 교우관계, 학교폭력예방 효과도 컸다는 검증이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위축되는 마당에 학생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고르는 기회 부여와 가족과 더불어 책 펴보는 일은 가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가 있을 때 더 움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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