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님아, 동해 망상 나들목을 건너지 마오.'

고대가요인 '공무도하가'가 2021년 2월 설 명절을 앞두고 바람에 허허롭게 나부낀다.

2020년 한 해 동안 온 세상을 뒤흔든 '코로나19'는 더불어 사는 인간 사회를 극도의 개인주의로 만들었다. 삶의 양상을 변화시킨 변곡점의 역사를 다시 찍게 한 광풍이다. 일가친척이 모여 도란도란 정겹던 설 명절에 부모 자식이 휴대폰 영상으로 만난다. 가족이라도 5인 이상 모임을 자제하라는 지침에 따라 동해시에서 내건 현수막 문구가 오늘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고향의 부모님은 보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참고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 당부를 한다. "네, 그러겠습니다" 냉큼 대답한 효자는 제 자식과 짐을 꾸려 고향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 강원도 명소에는 객실이 꽉 찼단다. 따로따로 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북적북적하다. 아이들 있는 집은 연휴 동안 꼬박 집에만 있는 것도 한계가 있겠다싶어 이해가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큰형님 댁에서 이번 명절엔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 친정에도 명절 전 나 혼자만 잠깐 다녀왔다. 딱히 갈 데가 없다. 밀린 일이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등한시했던 걷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어진 마음을 다잡을 요량으로 공원 산책길에 나섰다.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곳이 공원이다. 복잡한 도심이나 아파트 단지에도 자연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공원은 이제 테마가 있는 또 다른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진천문학공원이 그렇다.

2008년 조성된 문학공원은 화랑관과 공설운동장 위쪽으로 야트막한 둔덕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살린 산책로가 있고, 각종 나무와 연못 그리고 몇몇 돌 조형물이 운치 있게 배치되어 있다. 훈민정음 글자를 지붕 삼고 있는 피라미드형 건축물은 독특한 공간이다. 산책로 따라 자연을 거닐다 보면, 우리 지역의 근현대 작고 문인들의 시비가 반겨 맞는다.

위당 정인보 선생의 시 '조춘'이 먼저 봄을 노래하고 있다. 그 옆으로 조벽암 선생의 시 '향수'가 해 저물녘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풍기고 서 있다. 유재형 선생의 시 '나룻배'가 한 오리 풀잎처럼 오롯이 흘러와 합류했다. 산직마을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교육과 독립운동에 바친 이상설 선생도 '삼읍'시를 통해 통한을 쏟아냈다. 조명희 선생 역시 '나의 고향이' 시를 들고 고향을 찾았다. 한국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선생은 '훈민가'로 사람들을 붙잡고 잠시 발길을 돌려세운다. 그뿐이랴. 진천문인협회를 발족하여 진천 문학에 씨앗을 뿌린 송재섭 선생의 '행복'과 이내현 선생의 '나목의 미소' 시비도 자리하고 있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진천문학공원은 문학의 향기와 함께 심신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따사로운 곳이다. 산책로를 걸으며, 아직 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돋으려 터지려는 새움의 기운이 햇발에 묻어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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