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화가·국학원 상임고문

정치권의 예산지출 요구에 대하여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지지지(知止止止)"라는 함축적인 항변을 하였다. 도덕경의 구절(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로 자신의 족함을 알고 그칠 때를 알아 능히 그치는 것은 위태로움에서 벗어나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을 맞아 나라의 곳간을 지켜야 하는 자신의 심정을 쥐어짜듯 토로한 마음의 토로일 것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울멍줄멍 도통 여유 없는 삶을 이어가는 보통 백성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어 귀에 맴돈다.

'분수를 느끼고 만족할 줄 알아라.'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말로도 회자된다.

서기 612년, 수나라가 우중문을 앞세워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요동에서 고구려 군에게 굳게 저지당한 수나라 군은 30만 별동대로 평양을 직격했으나 이미 을지문덕의 청야전술에 걸려 군량 보급이 떨어지는 등 곤경에 처했다. 이때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한편의 시를 보낸다. '신묘한 계책은 천문을 통달하고, 오묘한 전술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다. 전쟁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을 아신다면 그만 돌아가시지!'(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만족을 모르는 적에 대한 준엄한 놀림이다. 이 전투는 역사에 '살수대첩'으로 명명되니 30만 명의 수나라 별동대중 겨우 2천700명 정도가 살아 도망쳤으니 지족을 모른 대가는 실로 처참하다.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꼽히는 '명월 황진이'는 넘치는 끼로 고상한 수행자들을 파계하게 하여 망신스럽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 시조의 주인공이 된 벽계 이종숙은 세종대왕의 후손으로 그 또한 자타가 공인한 당대의 가장 멋있는 선비요 풍류객이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도 황진이를 보는 순간 너무나 황홀하여 말에서 떨어졌다하여 이 시에는 '벽계수 낙마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30년 면벽수행으로 생불로 알려진 '지족(知足)선사'도 파계 당했다. 그런 황진이도 마침내 삶의 진정한 뜻을 알고 스승을 모신이가 바로 화담 서경덕(1489~1546)으로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 황진이를 '송도 3절(松都三絶)'이라고 칭하니 그들의 자연처럼 맑고 올곧은 인격을 상징한다.

우리겨레의 세계적인 보물로 단군조선 이래 한민족의 생활 속의 진리를 집대성한 경전인 '참전계경' 제176사에는 '정식(精食)'이란 구절이 있다.

'정식이란 욕망으로 넘쳐난 음식을 구하지 않는 것이니 호랑이는 고기를 탐하다 함정에 빠지고 물고기는 미끼를 취하려다 낚시 줄에 걸리는 법이다. 그것은 오직 탐내는 입 때문이다. 입 때문에 몸을 잃으면 영혼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된다. 자신의 몸에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그 이상의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을 정식이라고 한다.'(精食者不求重食也 虎陷肉穽 漁懸餌綸者 貪口也 身失於口 靈無所寄 其濟之者精食乎)

신축년이 되어서도 국내외의 크고 작은 모든 사건사고가 그칠 때를 모르니 너무 나가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지구 온난화, 빈부의 갈등, 이념 대립 등등 범지구적 참사들도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마지막 청구서이다. 곧 들이 닥칠 지구적 참사들 역시 그칠 줄 모르고 또는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데에서 사단이 나고 결국 개인과 나라의 참극이 야기되고 있다.

장영주 화가
장영주 화가·국학원 상임고문

우리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모든 것을 미래 세대들에게서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을 밝게 알아야 한다. 방대한 정보 집적과 편리한 온라인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하드웨어의 변화속도도 앞당기고 있다. 옛날에는 십년마다 변한 강산이 지금은 일 년마다 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불십년은 권불삼년이 되어 어제의 속임수가 오늘 들통이 나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식정언(精食正言)'의 시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인기여성 그룹의 노래에 'GGGG'가 있었다. 'Good girl Good guy'의 준말일터이니 선남선녀쯤이 될 것이다. 만족을 알아 헛된 욕심으로 배를 채우고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가히 선남선녀임이 분명 할 것이다. 선남선녀가 넘치는 공생과 상생의 사회를 바라는 것 또한 정녕 분수를 모르는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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