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고된 하루를 지내고 창밖 하늘을 본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달도 자신의 몸을 보이지 않는다. 아득히 먼 곳에 떠 있는 별들만이 무량으로 황량한 마음을 끌어당긴다.

음력 매월 1일은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인다. 그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을 볼 수 없다.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달. 이러한 상태를 삭(朔)이라 한다.

사람 관계에서도 삭(朔)을 볼 때가 있다. 곁에 있어도 드러나지 않게 붙잡아 주는 그런 달 같은 사람이다. 늘 만날 수는 없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 곁에 없지만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파수를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다.

K 선생은 위대한 성 모니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그녀 가진 사랑의 깊이를 말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깊이가 그랬다. 남편을 여의고 가장 절실했던 시절, 혼자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몰라 헤매 일 때 모든 일을 자연스럽고 고수다운 면모로 나의 무거운 하루를 무사히 넘게 해준 조력자였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이럴 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묻게 되고 스스로 판단하게 했다. 그녀의 끝없는 열정은 내가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주파수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의 힘겨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에 확고한 믿음을 주었고,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웃음으로 넘길 줄 알게 하고 축 처진 그믐달처럼 고개 숙일 때마다 '힘내라' 기운을 불어주며 삶을 재촉했다.

오롯이 내게만 들려주는 소리 없는 눈길은 많은 날을 삭(朔)으로 비춰주었다.

삭이 지나고 음력 초사흘이면 초승달이 뜬다. 검은 커튼 사이로 살짝 내민 광원체는 빛이라 하기에는 나의 존재만 간신히 알리는 빛이었다. 나는 수줍게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점 광채를 드러내며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때 만족을 느끼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생각했다. 상현달이 점점 커져서 보름달이 되고 다시 점점 작아져 하현달이 된 뒤 더 작아져서 그믐달이 되어 결국 삭(朔)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드러내는 삶이 얼마나 피곤하고 곤고한 삶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 삶 속에 나를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한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일하는 동안에는 삭(朔)이 되어 나 자신은 감추었다. 그렇게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 과정 속에서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달이 차올라도 줄어들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 크기가 변해도 달의 원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언제나 차오르지 않아도 그의 밝음은 변치 않았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태양의 빛을 빌린다. 태양의 빛을 빌려 어둠을 밝히며 앞뒤를 구별하게 하고 바닷물을 밀물과 썰물로 만들어 그 시간과 양을 바꿔놓는다. 밀물은 달이 위치한 곳으로 끌어당겨 그 힘을 작용한다. 내가 실족할 때마다 그녀의 믿음은 밀물이 되어 내게 새 힘을 나게 했다. 그녀의 기조력은 밀물과 썰물로 내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오늘도 어김없이 삭(朔)으로 빛을 발하며 나에게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열정과 인내를 갖고 빛을 보내준다.

평생을 함께 가며 빛을 전해주는 님. 그 빛을 공유하며 공생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성 모니카. 나는 오늘도 그녀가 보내주는 빛 속에 무지개 빛깔로 떠있다. 그 무지개 빛은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나에게도 다른이에게 삭(朔)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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