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일주일에 두 번, 청주와 제천을 오간 지 9개월째다.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가끔 "어 벌써 왔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차분히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는데 깜짝 놀란 건 오디오북 조회 수가 수만에서 수십만이라는 거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책을 접하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였지만, 지금은 중간에 일부러 국도를 이용하기도 하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가보지 않았던 국도로 돌아가기도 하면서 나의 왕복 길은 재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승용차로 국도변을 가다가 어떤 기사식당이 맛이 좋다며 그곳에 들려서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길눈이 밝으셔서 어디를 거쳐서 어느 도로를 타고 가면 빠른지, 어느 쪽으로 가면 중간에 맛 좋은 식당이 있는지, 어떤 도로가 막히지 않는지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다.

오래되지도 않은 그런 일들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만 간다. 계속 늘어가는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 도로로 인해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만, 이제는 국도변의 풍경도, 맛 좋은 기사식당의 추억도 함께 잊혀 질 것이다.

19세기 초 프랑스에 증기기관차가 처음 생겨났을 때 시인들은 그것을 공간의 살해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전에는 다른 마을에 가려면 경험 많은 어른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섰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옆 마을로 가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그 길마다의 장·단점, 가는 중에 쉴만한 곳과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 경치가 좋아 한 번 들려서 가면 좋은 곳과 위험해서 조심해야 하는 곳과 같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내 마을과 주변의 공간에 대해 이해하고 살아갔을 것인데 증기기관차로 역에서 역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모두 쓸모 없는 지식이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오갔을 오솔길도, 수많은 길손들이 쉬어갔을 자리도, 나그네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었을 우물도 모두 잊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br>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역사는 반복된다. 증기기관차의 출현으로 오솔길이 잊힌 것처럼, 얼마 가지 않아서 국도변의 풍경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국도변 풍경을 보려고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LP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고, 모처럼 귀한 휴식 시간에 책장을 넘기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비하면 갈수록 정이 사라지고 사회가 건조해지고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효율이 아니라 감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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