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배추
못난이 배추
  • 중부매일
  • 승인 2021.03.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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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재래시장에 들어서니 겨우내 추위와 역경을 이겨낸 색색의 봄꽃들과 봄동, 미나리, 달래 등 다양한 채소와 봄나물이 반긴다. 싱싱한 야채와 봄나물이 침샘을 자극하고, 예쁜 꽃들이 보내는 고운 미소에 만면희색 입꼬리가 올라간다. TV만 틀면 코로나 19, LH공사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 등 희망보다는 걱정과 허탈감으로 지끈거리던 머리가 상쾌해지며 마법처럼 어머니가 떠오른다.

오륙십 년대에는 김장을 많이 했다.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재료로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동치미 등 김치광에는 김치단지가 몇 개였는지 모른다. 배추김치도 지금처럼 열 포기 스무 포기가 아니라 두 접 세 접이었다. 어머니 혼자 팔 남매 키우느라 곤궁하나, 더 어려운 이웃들과 베풂과 나눔을 위해 푸짐하게 했다.

몸이 약해 5㎞나 되는 학교를 걸어 다닐 수 없어 제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나는 어머니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배추밭에 갔다. 속이 꽉 찬 배추는 어린 눈에도 그림 같은데 어머니의 눈빛으로 더욱 신이 났다. 망아지처럼 밭고랑을 뛰어다니다 보니 이빨이 빠진 것처럼 지질히 못난이 배추가 군데군데 있었다. 어딘지 나와 닮은듯해 안쓰러웠다. 쪼그리고 앉아 어디 아프냐고 쓰다듬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손가락 길이와 쓰임새가 다 다르듯 식물도 마찬가지라며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솜씨 좋은 어머니의 김치 맛은 일품이었다. 김칫국, 김치전, 김치만두 등 무얼 해도 맛이 좋았다. 직접 기른 콩나물에 김치 몇 쪽, 멸치 몇 마리 넣고 끓이는 콩나물국의 시원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겨우내 먹은 김치에서 군내가 나는 삼월이면 어머니는 배추밭으로 가셨다. 겨울 동안 눈과 비, 매서운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 더 못난이가 된 지스러기 배추와 부추를 뽑아 오셨다. 얼었던 겉껍데기는 된장국을 끓이고, 고갱이는 부추를 넣어 겉절이를 만들어 주셨다. 못난이 배추의 아삭하고 고소한 맛과 부추의 달짝지근한 맛이 어우러져 봄철 떨어진 입맛을 돋웠다.

못난이 배추는 아니지만, 봄동에 오이와 달래를 넣고 겉절이를 만들었다. 참기름과 깨소금 듬뿍 넣고 갖은 정성 다했으나 어머니의 손맛을 낼 수가 없다. 딸들은 어머니의 손맛을 대물림한다는데 언니들과 달리 나는 아닌 듯싶다.

솜씨도 그렇지만 지혜도 어머니를 따를 수 없다. 친구들은 학교 가는데 집에만 있어 의기소침한 내게 틈틈이 한글을 가르쳐주셨다. 어머니는 외삼촌이 독선생에게 글을 배울 때 어깨너머로 익히셨다는데 한글과 한문 실력이 보통 수준을 넘었다.

이난영 수필가<br>
이난영 수필가

성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의 차이라고 한다. 입학은 늦었지만, 한글을 배우고 입학해 용의 꼬리가 아니라 뱀의 머리가 되었다. 자존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준 다섯 손가락의 가르침은 내 삶의 지표가 되었고, 공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모범적으로 할 수 있었다. 궁핍함 속에서도 나눔과 베풂을 생활화한 어머니의 공덕으로 오늘의 내가 있지 싶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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