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1982년 서울 변두리의 한 중학교 교실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로야구중계 열기로 뜨거웠다. 팀에 따라 출신 지역들이 바로 드러나곤 했다. 서울 토박이들은 MBC청룡야구단이었으나, 이 팀을 응원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OB베어스, 해태타이거즈, 삼성라이온스가 대세였다, 충청, 호남, 영남권 출신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40년째인 지금도 그 친구들은 그때의 팀을 응원하는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5공화국의 3S정책 중 하나가 스포츠였다. 그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였고, 정권이 주도해서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민속씨름 같은 프로스포츠를 급조했다. 세미프로리그였던 농구대잔치도 1983년에 출범시켰다. 이 중에서 프로야구는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야구 경기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경기장에는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며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해외로 진출하기도 하였고, 경기 수준도 높아졌으며, 미디어의 영향 등으로 야구의 새로운 재미들이 팬들을 사로잡으며 성숙해지고 있다. 특히 구단의 사령탑인 감독의 리더십은 팬들의 주요 관심사다.

야구에는 '빅볼(big ball)'과 '스몰볼(small ball)'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팀의 스타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빅볼이라 불리는 팀은 장타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나 거물급 투수가 선수로 구성되어 선수 개개인의 실력에 의존해 경기를 풀어가는 형태를 말하며, 소몰볼은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가 단타, 희생번트, 도루 등이 조직력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형태를 말한다. 빅볼은 미국 메이저리그 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스몰볼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프로야구팀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스몰볼의 대표적인 국내 감독이라면 SK의 전성기를 이끈 김성근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스몰볼은 팀훈련을 강화하고 이기는 전략을 내세워 상대팀을 철저하게 분석해 선수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다 보니 잦은 선수교체로 감독이 경기장에 등장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경기의 흐름을 끊는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SK 팬들은 그의 작전과 매력에 빠져드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감독 스타일이 주도하는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최근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을 맡은 수베로 감독이 화제다. 한화는 올 시즌 대타와 대주자 기용이 10개 구단 중 가장 적은 팀이다. 수베로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선수를 믿고 맡기며, 실패를 하더라도 선수는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수베로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경기 전후는 물론이고 경기 중에도 선수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일상적인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선수들의 성향도 잘 파악하고 있다. 과거 선수들은 자극했을 때 승부욕이 나왔지만, 요즘 세대들은 인정하고 동기부여를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베로의 리더십은 프로야구 한화를 수베로 감독 스타일이 아니라 한화 스타일의 야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진정한 야구팬들은 경기가 이기고 지는 결과로 몰입되지 않는다. 그들은 응원하는 팀이 어떻게 싸웠고, 어떤 희망을 주었는지에 관심이 더 많다. 그리고 열성 팬들은 감독과 해설가 수준 이상으로 팀과 선수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관중을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40년 전 쿠테타 정권의 수단으로 시작된 프로야구지만, 지금은 정치가 배워야 할 프로야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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