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사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창의적 사고, 논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등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단편적인 사고보다는 두 개이상의 사고가 복합된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사고의 참신성을 가져다 주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가 창의적 사고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 일선 교육현장에서 가끔 본인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라고 물으면 어느 강의장에서도 손을 드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튀는 행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그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싶지 않는데 있다. 우리가 살아온 문화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러명이 있는 데 그중 한사람만 웃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이렇게 웃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라고 물으면 미국 사람들은 기분이 좋은 사람이네요 라고 대답한다. 그 사람 자체만 생각한다. 웃고 있으니까 행복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답은 다르다.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는 사람이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수의 기분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이만큼 우리나라는 관계주의 문화이다. 그리고 우리세대는 그 문화에 상당히 익숙해 져있다. 그러니까 창의성이 있는 사람도 손을 들지 못한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조차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럴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교육현장에서 창의성에 대한 질문을 학부모님한테 정말 많이 받기도 한다. 그런데 대개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자녀에 대한 창의성이 눈에 띄게 그리고 단시간내에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이라는게 교육을 한다고 해서 바로 성과가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게다가 그 성과를 수치화 하기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창의성을 능력으로 보는 데 있다. 여기서 창의성을 인지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으나 또 다른 면에서 투자의 개념으로 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능력이라고 생각하니까 당장 그 수치를 측정하거나 상승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조이 길퍼드(Joy Paul Guilfoed)는 독창성, 상상력, 민감성, 융통성 등이 창의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독창적 생각을 하자고 상상력을 키우자고 아무리 다짐하고 강조한 들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창의성이라는 결과를 얻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선 부모님으로서 우리가 가장 버려야 할 태도는 우리 아이는 창의성이 떨어져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다. 우리 아이는 새로운 걸 생각하는 능력은 별로 없어요. 그냥 지시하는 대로 성실하게 따라 하는 건 잘해요. 창의적인 건 포기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나 가지면 좋겠어요 라고 말이다. 이렇게 아이를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아이는 창조적인 사람이 아니예요 라는 말은 전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창조적이다. 다만 나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들어가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창조적인 아이를 낳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낳은 아이를 창조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방법은 다름아닌 아이가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부모님께서 설계하고 함께 그 상황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아이는 충분히 창의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창의적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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