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정부가 추진하던 '만5세 초등학생 입학' 학제개편이 교육부총리의 퇴진과 함께 폐기단계를 밟고 있다. 아동의 발달속도가 빨라지고, 사교육비를 절감하며, 산업인력 조기 확보라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민감한 사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정부의 미숙함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충분한 교육적 검토와 여론 수렴 없이 성급하게 추진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학부모 포함 교육당사자의 98%가 이 정책에 반대한다는 통계가 이를 대변해준다.

교육 발달심리학에서 만 5세 유아의 아동발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타당한 검증이 충분하지는 않다. 학제 개편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는 사안으로 국회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고, 시도 교육감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취학연령 학부모의 의견수렴도 절대적이다. 필요한 과정들을 생략한 채 학제 개편을 밀어붙인 정부의 실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만 5세 입학 문제는 일단 폐기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학제 개편은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여야 하고, 그 과정 속에 9월 신학기 제도도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3월 신학기 제도는 일제 강점기의 유습이다. 해방 이후 한때 9월 신학기 제도가 시행된 적 있고, 1953년에 4월 신학기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지만 1961년 다시 3월 신학기 제도로 환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개교기념일이 4월 1일이 된 학교들이 이 때 설립되었다) 3월 신학기 제도는 일본과 한국 등 몇 개 국가에 불과하고, 세계적인 학제는 9월 신학기 제도가 대부분이다.

보편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학제를 선택한 결과, 외국이나 한국으로 전출입하는 학생들이 학기제의 미스매치로 혼선을 빗고 손해를 감수한다. 2월이 학업취약기가 되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도 하다. 겨울방학은 짧고 여름방학은 길게 갖는 9월 신학기 제도는 국제화 시대에 통용되는 기준으로 학교현장의 혼선을 줄이고 학업공백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학습효율이 떨어지는 여름방학을 여유있게 확보하여 체험과 진로활동을 모색할 수 있는 준비기간을 마련할 수 있다. 여론의 질타 때문에 학제개편을 사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장기적인 과제로 학제 개편을 검토하여야 하고, 여기에 더해 유치원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관계자의 의견수렴, 아동발달 속도 검증, 국회 입법 절차 지원, 소요 재원 확보 등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출범할 국가교육교육위원회가 이 사안을 주도하는 것도 좋지만, 별도로 범정권 차원의 교육거버넌스(Education Governance) 구축도 필요하다.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이기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권의 성과를 기대하여 급히 추진하면 이번 같은 실패를 겪을 뿐이다. 신중한 자세로 여론을 수렴하며 정교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국가 정책이 그렇지만 교육정책은 일관성 있는 준비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국가 운영에 있어 모범이 되는 독일 정치인들이 국가정책을 수립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Langsam aber sicher" 우리가 한번쯤 새겨야 할 경구(警句)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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