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흔히 현대사회를 일컬어 '평생학습' 사회라고 한다. 언제, 누구든,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린 사회를 말한다. 평생학습 사회의 핵심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알기 위한 학습', '행동하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 '함께 살기 위한 학습' 등이 이루어진다. 직장인들이 더 나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학문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업적을 쌓는 것도 자아실현이다.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도 자아실현 요소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자아실현과 거리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간에게 자아실현 욕구는 중요하다. 자아실현의 욕구 상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약화시킨다. 삶의 희망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경우도 많다. 희망이 없는 삶을 생각해보라. 그런 삶이 한 인간의 삶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겠는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만 충족되었다고 해서 그 삶이 자아실현을 향해가는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메슬로우(Maslow)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인간의 최상위 욕구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최하위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이 충족되고 나면 이후 귀속의 욕구, 인정의 욕구 등으로 욕구 변화가 발생한다.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나아가 이 욕구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기능한다.

동물은 자아실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실현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형식적 교육이든, 비형식적 교육이든 교육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힌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의미는 평생학습사회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된다. 자아실현은 단순히 외형적인, 겉으로 드러나는 특정한 능력의 성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내적, 질적인 부분도 포괄한다. 예컨대 글을 읽지 못했던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느끼는 성취감, 젊은 시절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여건상 할 수 없어 나이가 든 후 다시 도전하는 즐거움,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만학을 결심한 경우 등 크게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에게는 유의미한 자아실현이 될 수 있다.

자아실현이란 한 개인의 긍정적인 내적 욕구가 땀과 노력을 통해 현실화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펼쳐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자아실현으로 가는 여정이다. 이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개인의 정체성도 만들어진다. 농부에게서는 땀 냄새, 도공에게서는 흙 냄새, 학자에게서는 묵향(墨香)이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자아실현에 대한 인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기독교적 구원으로 가는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유의지를 허락한 신의 의지가 세상에서 구현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든 아니든,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자아실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필자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성취를 '외적 자아실현',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한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내적 성취를 '내적 자아실현'으로 칭한다. 물론 양자 간 우열을 구별할 수는 없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그 자체가 아름다운 자아실현이란 점에서다. 앞서 지적했듯이 평생학습사회에서 자아실현은 생각하는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넘어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라는 함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평생 '학습하는 동물(Homo Eruditio)'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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