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던바의 수(數)'라는 용어가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가 영장류가 관리할 수 있는 집단규모를 연구하며 제시한 진화심리학 용어다. 던바는 "특정한 척추동물 종(種)의 집단 안에서 두뇌 크기가 사회집단 크기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전제로, 침팬지의 경우는 약 30명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인간은 150명 정도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던바의 이론에 의하면. 침팬지는 털고르기(Grooming)를 통해, 인간은 언어를 통해 동료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집단의 결속을 도모한다고 말한다. 던바의 학설은 언어가 인간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있어 언어의 중요성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사학이 인문학의 필수 과목이었고, 로마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말 잘하는 사람을 '레토'라 칭하고 이들이 구사하는 설득력 있는 화법을 '레토릭(Rhetoric)'이라 칭하기도 했다. 언어는 공동체의 단합을 호소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시되는 덕목이었다.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언어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국난을 극복하자는 방송 연설 장면으로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같은 시기 영국 수상 처칠은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라는 명연설을 통해 국민들의 항전의지를 고취시켰다. 언어의 힘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다.

최근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정계가 혼란스럽다.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움에 빠진 국가 상황은 아랑곳없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닫고 있어 안타깝다. 얼마 전 폭우로 어려움에 빠진 이재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국회의원의 실언도 있었다. 대통령선거와 지자체 선거에 이슈가 된 것은 정책논쟁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품격 떨어지는 언어 행태였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들의 저급한 언어도 문제지만,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방이 도를 넘어서면서 혐오를 조장하는 언어행태는 더 우려스럽다. 각종 인터넷 매체에 난무하는 거친 언어들의 배경에는 정치인들의 언행이 자리 잡고 있다.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자들의 화법이 수준이하로 떨어지니 국민이 오히려 정치인들의 언어를 걱정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공적인 언어는 반영구적인만큼 파급력이 크고 파장이 확산된다. 말은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오래 기억하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만큼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듯이, 언어는 인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얼굴이다. 정제된 언어는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고, 국가의 품격을 가늠한다. 공동체의 비전과 미래를 위해 지도자들부터 품위 있고 고양된 언어를 사용해야한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언어를, 상처가 아닌 치유와 희망의 언어가 우리 지도자들로부터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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