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권오중 시인·가수

가을이 되었습니다.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황금물결이 풍요롭게 일렁입니다. 하루살이는 무리를 지어 하늘을 빙빙 맴돌고, 메뚜기는 벼 사이를 팔짝팔짝 뛰어다닙니다. 참새는 허수아비를 비웃듯 벼를 까먹고 있습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가을아 가을아/하늘이 왜 그렇게/높고 파라니//그건 구름이 구름이/지평선 너머 바다로/소풍갔기 때문이란다//가을아 가을아/바람이 왜 그렇게/맑고 시원하니//그건 여름이 여름이/지평선 너머 먼 나라로/여행갔기 때문이란다 (가을아 가을아 권오중)

벼 사이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메뚜기가 열심히 벼를 까먹고 있는 참새에게 말했습니다.

"참새야! 너 재미가 아주 좋구나. 나한테 한턱 내." "내가 지금은 바빠서 안 되고 내년에 쏠게."

그러자 메뚜기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뭐! 내년? 내년이 뭐니?" 그러자 참새가 답답하다는 듯 메뚜기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 가을이 지나면 눈 내리고 추운 겨울이 오지.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봄이 오는데 그게 바로 내년이야."

그러나 한 해밖에 살지 못하는 메뚜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통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참새가 귀찮다는 듯 말합니다."야! 너랑은 차원이 달라 같이 이야기를 못하겠구나." "무슨 소리야? 내년이라니? 그리고 너희 참새들이 그렇게 벼를 까먹으면 사람들의 식량이 부족하게 되는 것 아니니?"

"참! 너는 걱정도 팔자다. 우리 참새들이 먹는 것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야. 오히려 사람들은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어디다 보관해야 될지 걱정이 태산 같단다. 심지어는 북한에까지 쌀을 보내 주고 있단다".

그러자 메뚜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쌀이 그렇게 남아도는데?" "해마다 풍년이 들어 쌀 생산은 많아지는데 그에 비해 소비는 갈수록 줄어든단다. 게다가 값싼 외국의 수입쌀까지 막 들어오니 남아돌 수 밖에 없지."

"아, 그렇구나." "옛날에는 식량이 모자라 하얀 쌀밥을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단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라면이나 빵,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고 밥을 잘 먹지 않잖아. 식량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풍년이 들면 농민들이 풍년가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단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풍년이 들면 오히려 쌀값이 떨어져 농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그러자 메뚜기도 아는 척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한가 보구나?"

"그래! 풍년이 들면 농민들의 걱정거리가 늘어나지. 들녘은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불타고 있지만 농민들의 가슴은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타는 듯해 보였어."

메뚜기가 부러운 듯 참새에게 말합니다. "참새야! 너는 여기저기 멀리 날아다니며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실컷 들어 아는 것도 많으니 참 좋겠구나."

권오중 시인·가수
권오중 시인·가수

"그렇지도 않아, '아는 게 병'이라고 오히려 세상을 잘 모르는 네가 더 행복한지도 몰라." 이 말을 남기고 참새는 혼자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진성의 보릿고개는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됐다. 고개 숙인 벼가 갈바람에 일렁이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 두 팔 벌린 허수아비가 서 있는 황금벌판에서 근심 걱정 없이 놀고 있는 참새가 마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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